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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경 로마의 세력은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건설한 지중해 무역 도시들을 탐내고 있었습니다.


완전 농업 국가였던 스파르타와는 달리 로마는 무역도 하는 농업 국가였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점차 팽창하던 로마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되고,


이러한 로마에게 당시 해상의 1인자였던 카르타고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또한 카르타고는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영토 확장과 제국의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해상의 1인자 카르타고와 육상의 1인자 로마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포에니 어원



포에니의 어원은 페니키아입니다.


오늘날 소아시아에서 성장한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로 이주하며 카르타고를 건설했고,


카르타고인들의 뿌리는 페니키아였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페니키아인을 부르던 포에니의 이름을 따서 포에니 전쟁으로 불리게 됩니다.





1차 포에니 전쟁의 이유



출처 : wikipedia



시칠리아는 카르타고의 무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은 상선의 항로상 중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무역의 중심 항로를 확보하려면 시칠리아 섬을 점령해야만 했습니다.


카르타고의 엄청난 부를 확인한 로마인들은 시칠리아 섬을 눈독들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칠리아 섬은 완전한 카르타고의 지배에 있지 않았으며 로마인과 카르타고인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점령해야하는 땅, 로마의 심장을 노리는 칼로 생각했습니다.


무역을 발전시키고 해상으로 나가려면 카르타고를 반드시 멸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은 내전에 휩싸여 있었으며, 라틴계와 그리스계인들에 의해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도시 국가인 메시나는 가장 세력이 강력했던 시라쿠스의 공격을 받고 있었으며,


메시나는 카르타고와 로마에 원군 요청을 하게 됩니다.



1차 포에니 전쟁



출처 : wikimedia



메시나는 거리가 먼 카르타고 보다는 확장중이었던 로마에게 구원 요청을 하게 되었고 로마는 구원병을 파견합니다.


메시나는 카르타고에게도 구원 요청을 하였지만, 카르타고에서 먼저 군대를 파견할 경우 시칠리아 섬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짐을 파악한 로마는 카르타고를 견제하기 위해 일찍 구원병을 파견합니다.


군대를 메시나로 파견한 로마는 메시나를 로마의 세력하에 두었고 시라쿠스까지 귀속시켜,


시칠리아 섬의 동부와 이탈리아 남부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칠리아 섬에서의 영향력이 줄게 된 카르타고는 대규모의 병력을 시칠리아에 파견하게 됩니다.


기원전 264년 1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입니다.



1차 포에니 전쟁, 하밀카르 바르카와 스키피오



출처 : flickr



17년 동안의 교착 상태카르타고의 명장 하밀카르 바르카가 등장하면서 끝이나게 됩니다.


하밀카르 바르카는 카르타고의 첫 번째 위대한 장군입니다. 한니발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막강한 전함인 카르타고의 5단 전함을 앞세워 시칠리아 본토를 휘젓고 다닙니다.


카르타고 5단 전함의 가장 큰 무기는 상대 전함을 파괴시키는 거대한 청동 충각이었습니다.


길이 36m, 폭 3m-5m, 탑승 인원 420명, 무게 100톤의 카르타고 5단 전함은 기동성 또한 매우 뛰어났습니다.


또한 전함을 만들어내는 속도도 매우 빨라 카르타고의 배가 침몰해도 곧바로 다른 전함이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로마는, 침몰한 카르타고의 전함을 노획하여 재조립하고,


그와 유사한 수십척의 전함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카르타고의 전함과 같지는 않았지만 로마 해군 전력 상승에 큰 기여를 하게됩니다.


기원전 241년 카르타고와 로마는 시칠리아 서부 연안의 에가디 제도에서 결전을 치루게 됩니다.


로마 해군 사령관 스키피오가 포로로 잡히지만, 그 뒤를 이어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두일리우스는,


까마귀라 불리는 코르부스 잔교를 탑재하여 전투에 나서게 됩니다.


포로로 잡힌 스키피오는 2차 포에니 전투에서 한니발을 물리치고 로마의 승리를 이끈 스키피오 장군의 아버지입니다.



카르타고 전함과 거리를 가까이 유지하여 코르부스 잔교를 배와 배 사이에 설치하고 백병전을 치룬 로마군의 승리,


카르타고군 3만여 명이 포로로 잡히고 하밀카르 바르카가 퇴각하게 되며 로마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이후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로마에 지불하게 되고 지중해의 섬을 뺴앗기는 등 패권에서 밀렸지만,


카르타고는 2차 포에니 전쟁을 준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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