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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 대전은 조조와 원소가 벌인 전투입니다.



적벽 대전, 이릉 대전과 함께 삼국지의 3대 전투로 손꼽히는 전투입니다.


후한 말 혼란스러운 시대에 전국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했으며 전란의 시대였습니다.


관도 대전은 조조가 다른 세력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중요한 전투입니다.



조조와 원소



조조와 원소는 어렸을 적 함께 동문수학하던 친구였습니다.


환관 가문 출신이던 조조는 군웅할거 중기에 두각을 나타내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원소는 명문 출생으로 비록 노비의 자식이었지만 정치가로 명성을 떨치며 당시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습니다.



후한 말기 동탁이 낙양으로 진격하여 권력을 차지하고 헌제를 황제로 옹립하였을 때 원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원소는 외척이자 명문 귀족으로 동탁의 폭정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황제를 손안에 넣고 도의적인 명분을 확보하며 헌제 옹립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서로에 대한 불신과 견제가 이어지던 상황에 조조와 원소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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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전투



출처 : wikipedia



원소는 10만의 대군을 편성하고 조조와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원소군의 전풍은 지구전을 펼치며 적의 후방을 공격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원소는 전풍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전풍을 투옥시킵니다.


원소는 현재 황하의 남쪽 강변인 백마안량, 순우경, 곽도를 파견하여 조조군의 동군을 공격하게 합니다.



조조는 순유의 진언을 받아들여 연진에서 원소군을 견제하며 


원소군을 분리시키고 장료와 관우를 선봉으로 삼아 안량을 공격하게 합니다.


안량은 관우에 의해 수급이 베어집니다.



결과적으로는 원소가 백마, 연진에 이르는 주요 거점을 확보했으며 조조는 더욱 남하게 됩니다.


조조를 추격하던 문추 역시 전사하게 됩니다.



관도 대전



조조는 백마 전투에서 밀리며 허난성의 중무현 근처인 관도까지 남하하게 되고 원소군에 의해 포위를 당하게 됩니다.


전황은 지구전 양상을 띄고 있었으며 조조는 성안에서 6개월간 수성전을 펼치며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원소는 토산을 쌓고 지하 땅굴을 파는 등 다양한 전술로 조조군을 무너뜨리려고 했고,


조조는 발석차를 만들어 원소군의 공격에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대치 중 원소 휘하의 관료 허유가 조조에 투항하면서 상황은 변화합니다.


순우경이 지키는 원소의 보급 창고 오소 지역을 급습할 것을 진언하고 조조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조조의 오소 급습 성공으로 순우경의 부대는 전멸하게 되고 원소 진영은 내분이 발생하게 됩니다.



원소군의 장수 장합이 진영을 불태우고 조조군에 투항했으며,


장합의 공격을 받은 원소군은 기병 800기만 살아남아 급히 도망치게 됩니다.



관도 대전 이후



관도 대전 이후 원소와 조조는 황하를 사이에 두고 1년여의 대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202년 5월 급작스러운 원소의 죽음은 원소 아들들의 내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후계 다툼이 초래한 내전 끝에 원소가 세운 세력은 조조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기주를 평정한 조조는 최대의 세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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