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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돌은 아기가 태어난 후 1년이 지난 날,

 

즉 아기의 첫번째 생일을 의미합니다.

 

돌잔치는 아기의 첫번째 생일 잔치를 의미하며,

 

아기가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그리고 아기의 행복을 기원하고 앞날을 축하합니다.

 


한국의 돌잡이 문화

 

출처 : flickr

 

돌잡이는 아기의 첫번째 생일인 돌잔치에서 다양한 물건을 진열한 후

 

아기가 집는 물건으로 아기의 미래를 점쳐보는 의식이나 행사를 뜻합니다.

 

돌잡이에 쓰이는 물건은 매우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합니다.

 

잘 먹고 오래 사는 것이 중요했던 과거에는 쌀이나 실이 인기있는 물건이였지만

 

요즘에는 스포츠 용품이나 방송 관련 용품, 그리고 아기의 미래 직업에 대한

 

부모의 바램이 담겨있는 물건들이 인기있는 돌잡이 용품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돌잡이 용품
자산가 부자 문서 재력
학자, 관직 무병장수 대추 자손의 번창
청진기 의사 마이크 가수, 연예인 법봉 법조인
계산기 금융업 총, 활 경찰, 군인 스포츠 용품 스포츠 스타
마우스 엔지니어 카메라 영화 감독 지휘봉 사업가, 정치인
자, 바늘 손재주 사과 먹을 복 작가, 문장가

 


베트남의 돌잔치 문화

 

베트남에서 아기의 첫번째 생일인 첫돌을 담 토이 노이 Dam Thoi Noi라 합니다.

 

베트남 토속 신앙에 따르면, 아기가 첫돌을 맞이하기까지의 12개월 동안 열 두 명의 신이 아기를 보살피며

 

아기가 걷고, 웃고, 말하는 등의 아기의 성장과 발달을 도와준다고 합니다.

 

돌잔치는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아기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돌잡이 문화가 있으며,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 아기의 미래 직업과 운명을 점쳐보기도 합니다.

 

주로 연필과 쌀, 가위, 빗, 실과 바늘을 돌잡이 물건으로 사용하며

 

연필은 공부, 쌀은 돈, 가위와 빗은 손재주, 실과 바늘은 무병장수를 뜻한다고 하니

 

한국과 매우 흡사한 문화를 지닌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베트남 결혼 문화 확인하기

베트남 여행 팁 확인하기

 


중국의 돌잔치 문화

 

중국은 돌잔치에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하며 장수면이라 불리는 긴 면을 이용한 면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또한 호랑이가 아기를 보호한다고 믿기 때문에 호랑이와 관련된 물건을 선물한다고 합니다.

 

중국 역시 돌잡이 문화가 있으며 돌잡이에 쓰이는 물건으로는

 

붓, 책, 보석, 장난감, 실 등 한국과 비슷한 물건들을 사용하며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 확인하기

 


일본의 돌잔치 문화

 

출처 : wikipedia

 

일본은 이쇼모치라고 하는 떡을 아기의 등에 올려놓고 아기가 가지게 다닌다고 합니다.

 

떡의 무게는 약 2kg 정도이며 부모는 떡을 짊어진 아기의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며

 

아기가 세상에 나갈 준비를 도와주며 삶에는 기복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일본에도 돌잡이 문화가 있지만 지역에 따라 없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멕시코의 돌잔치 문화

 

출처 : wikipedia

 

멕시코에서는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이른 아침부터 아기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과자와 장난감등을 넣은 종이 인형 피냐타를 아기의 머리 위에 걸은 다음

 

피냐타를 깨뜨려 아기의 머리 위로 내용물들이 떨어지게 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는 의식을 한다고 합니다.

 


인도의 돌잔치 문화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아기의 첫번째 생일에 아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전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기원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돌잡이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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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정식 명칭은 독일 연방공화국으로 유럽에 위치해 있습니다.



독일은 유럽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변 국가가 가장 많으며,


덴마크, 폴란드, 체코,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총 9개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은 역사적으로 분열과 침략의 시대를 많이 겪었으며,


자신들이 강해져 유럽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져야 해야 했습니다.


▶ 덴마크 상식 확인하기

▶ 스위스 상식 확인하기



고대 게르만족



wikipedia


wikipedia



독일의 시작은 게르만족 시대부터 시작됩니다.


기원전 2세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발트해 연안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이 남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알프스 산맥의 북쪽과 라인강 동쪽 지역에 정착해 살기 시작합니다.



게르만족이 살던 지역을 갈리아 지역이라 부르기도 하며,


알프스 북쪽까지 진출한 게르만족은 알프스 남쪽에 자리하고 있던 로마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는 게르만족을 야만인으로 취급했으며 게르만족을 정벌하기 위해 수차례 갈리아 원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게 되고 라인강 동쪽의 갈리아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유럽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4세기, 훈족이 동쪽에서 유럽 대륙으로 쳐들어오게 되고 


게르만족은 훈족에 밀려 로마 (서로마) 제국의 영토로 난입하게 됩니다.


이를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 부르며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인해 혼란해진 로마는


476년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 흉노, 훈족 확인하기

▶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 확인하기





프랑크 왕국



wikipedia



로마가 멸망한 후 게르만 족의 여러 부족들이 나라를 세우게 되고


그 중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가 세운 프랑크 왕국이 가장 번성하게 됩니다.


프랑크 왕국은 오늘날의 프랑스와 라인강 북쪽을 아우르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800년, 카롤루스 대제 시절 프랑크 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카롤루스 대제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서로마의 황제에 임명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기원입니다. 


전성기를 달리던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사망한 후 세 명의 손자가 권력 다툼을 벌였고


프랑크 왕국은 베르됭 조약에 의해 동프랑크, 서프랑크, 중프랑크의 세 나라로 분열됩니다.



루트비히가 물려 받은 동프랑크가 오늘날의 독일이 됩니다.


중프랑크는 오늘날의 이탈리아, 서프랑크는 오늘날의 프랑스입니다.



911년, 루트비히 4세가 11살의 나이로 후계자 없이 사망하게 되자


동프랑크 왕국은 기존의 카롤링거 왕조의 명맥이 끊어지게 됩니다.


919년 귀족들은 동프랑크의 공국 중 가장 강력했던 작센 공국의 공작 하인리히를 왕으로 선출하면서  


동프랑크 왕국은 독일 왕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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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황오제의 신화부터 하나라, 상나라 


그리고 주나라에 이은 춘추전국시대까지를 선진시대라 부릅니다.



그 후 중국 최초의 통일 왕국 진나라를 시작으로 한나라, 5호 16국 시대와 위진남북조시대, 


수나라, 당나라, 5대 10국, 송나라까지 역사가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 최강의 몽골군에 의해 세워진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 중국 신화부터 춘추전국시대 확인하기

▶ 진나라부터 남북조시대 확인하기

▶ 수나라부터 송나라 확인하기

▶ 몽골군 확인하기

▶ 중국 화폐, 환율 알아보기



명나라



wikimedia



1279년 송나라를 멸망시킨 원나라는 홍건적의 난 등 한족들의 반란과


칭기즈칸 죽음 이후 분열된 몽골의 세력으로 인해 중국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1368년 도적 출신의 주원장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국하게 되며 


명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후의 한족 통일 왕조가 됩니다.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고 군사력이 증대되어 동아시아의 강자로 성장하였으나


토목의 변과 환관의 전횡, 만력제와 천계제 등의 암군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



농민 출신의 이자성이 베이징을 점령하며 순 왕조를 세웠으나 만주의 부족들을 통일한 누르하치의 금나라의 침입, 


그리고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가 금나라에서 청으로 국호를 변경하여 침략을 지속합니다.


결국 청에 의해 명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청나라



wikimedia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후의 통일 왕조로 후금의 후신입니다.


명나라 뿐 아니라 티벳, 위구르, 내몽골까지 점령하며 유라시아의 제국을 이루었으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뛰어난 황제들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륭제 말기부터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각해지며 백성들을 분노하게 하여


전국 각지에서의 반란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도광제 시기에 영국의 아편 유통으로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 전쟁이 발발하고 청나라는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태평천국의 난 등의 농민반란, 서태후의 전횡 등으로


1912년 북양군벌의 수장 위안스카이에 의해 청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 아편 전쟁, 태평천국의 난 확인하기





대군벌 시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후 중앙과 지방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군인들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세력을 펼치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크게는 북부 군벌과 남부 군벌로 나누며 군벌 속에도 다양한 파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군벌은 위안스카이의 북양군벌이 있습니다.


쑨원의 후계자인 국민당 장제스가 군벌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으며,


그 사이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국공 내전



wikimedia



1927년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와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 사이에 중국 재건을 두고 내전이 일어납니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를 1차 국공 내전, 


1946년부터 장제스가 타이완(대만)으로 이동한 1949년까지를 2차 국공 내전이라 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이 국공 내전에 승리하며 중국 본토에는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은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페이로 이전하고 타이완 섬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정전 협정은 없으나 현재까지 사실상 정전 중이라고 합니다.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오늘날의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며 오늘날의 중국입니다. 


▶ 중국 화폐, 환율 알아보기

▶ 타이완, 대만 여행 정보와 비자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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