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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분할로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이 탄생합니다.



이민족의 침입과 재정 악화 등의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동로마는 오늘날 터키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콘스탄티노플 도시를 건설합니다.


천년의 국가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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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1세



출처 : wikipedia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라고도 불립니다.


527년부터 565년까지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으며 옥타비아누스와 함께 로마 제국 중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482년 오늘날의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유스티니아누스는 삼촌을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주하게 됩니다.


유스티누스 황제 재위시절부터 행정을 도맡았으며 노쇠해진 황제를 대신해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황제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로 즉위하게 되며 유스티누스 황제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삼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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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의 반란



532년 히포드롬에서 열린 전차 경주의 양 팀 응원단이었던 청색당과 녹색당이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군중들은 황궁에까지 몰려들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수도를 버리고 달아나려합니다.


일주일 동안 지속된 니카의 반란은 약 3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으며,


테오도르 황후가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불러 반란을 진압하게 됩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반란인 니카의 반란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제위를 거의 빼앗을 뻔 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업적



1.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합니다.


기존의 로마에는 테오도시우스 법전이 있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이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법전을 만들고 체계화 합니다.



2.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를 통합하려는 종교의 통합을 시도합니다.



3. 성 소피아 사원을 재건하고 수로와 교량을 건설하는 등 건축 사업도 활발히 진행합니다.



4. 유스티니아누스는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는 데 큰 중요성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유스티니아누스의 옆에는 한니발, 알렉산더 대왕에 버금가는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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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의 영토가 게르만족 중 한 부족인 반달족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당시 이집트 못지 않은 곡창 지대였던 북아프리카를 탈환하여 지중해 항로와 곡물을 확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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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벨리사리우스를 이탈리아 원정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동고트족이 점령하고 있던 시칠리아와 로마를 탈환하는데 성공합니다.



540년 사산조 페르시아가 동로마를 침공하고 벨리사리우스가 출정합니다.


양 측은 별 소득 없는 전쟁을 치르다가 561년 50년간의 휴전 협정에 동의합니다.



552년 동고트 왕국의 수도 라벤나를 점령하고 동고트 왕국을 섬멸하였으며,


서고트족이 점령하고 있던 히스파니아 지역을 공격하여 몇몇 도시들을 회복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의 바램대로 옛 로마 왕국의 영토 대부분을 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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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초대 황제로 등극합니다.



로마의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수여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기부터 로마를 팍스 로마나 기간이라고 부르며,


기원전 27년부터 180년까지의 시대를 뜻합니다.


이전까지의 영토 확장 전쟁과 내전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기와는 달리,


팍스 로마나 시대는 약 200년간의 로마 평화 시기를 의미합니다.


▶ 카이사르 성장 학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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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 시대 이후



출처 : flickr



팍스 로마나 시대 이후 황실의 근위대가 황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쥐게 됩니다.


약 50년 동안 20명이 넘는 황제가 교체되었으며 황제의 자리를 두고 입찰 경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었으며 로마 내부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외부의 이민족들이 로마를 침략하기 시작합니다.


동쪽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북쪽에서는 슬라브족과 게르만족이 로마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넓은 영토로 인해 이민족의 침략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으며 이것은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시작





로마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로마를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기로 결정합니다.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현재 터키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명하고,


비잔티움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게 됩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동로마입니다.


▶ 터키 환율, 화폐, 역사 확인하기



395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동로마와 서로마를 구분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동로마 제국 역시 로마 제국으로 불렸으며 주변의 나라들도 로마 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구분하는 것은 편의상이며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그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단기간에 유럽 전체 국가 중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서로마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로마 제국의 수도는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한 로마라는 인식으로 인해


서로마 제국으로의 이민족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습니다.


동로마 제국으로 침략하던 이민족들 역시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돈을 지불받고,


서로마로 진격해 서로마를 침략하게 됩니다.



군기마저 약해진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채용하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큰 이유가 됩니다.


로마군의 절반 가량이 용병군이었으며 점점 치솟는 용병들의 몸값은 로마 재정 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476년 서로마는 고트족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은 사라지고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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