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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지중해를 향한 야욕은 수 많은 전쟁을 일으킵니다.



로도스 공방전으로 유럽의 기사단을 물리친 오스만 제국은,


이 후 기사단이 정착한 몰타를 공격하지만 몰타를 점령하지 못한 채 후퇴하게 됩니다.


베네치아의 키프로스섬을 반환하라는 오스만의 요구에 유럽의 국가들은 연합군을 창설하게 되고,


오스만과 유럽 연합 사이의 지중해 패권을 둔 16세기 최대의 해전 레판토 해전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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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적의 시작, 북쪽 해전



출처 : wikipedia



1571년 오스만과 유럽 연합이 과거 악티움 해전이 벌어졌던 레판토 서쪽 해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첫 해전은 연안 가까이에 주둔한 북쪽의 함대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베네치아의 바르바리고와 오스만의 마호메트 시로코가 전투를 시작합니다.


베네치아 함대가 오스만 함대를 둘러싸려고 하자 오스만 함대도 베네치아 함대를 감싸려고 이동하였으나


오스만 함대가 연안쪽으로 날개를 펼치면서 육지와 베네치아 함대 사이에 압착 당하게 됩니다.


이어 백병전이 시작되었고 베네치아 함대의 지휘관 바르바리고가 얼굴에 화살을 맞고 전투 불능의 상황이 됩니다.


베네치아의 차석 지휘관의 활약으로 베네치아군은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오스만 함대의 지휘관 시로코 역시 부상을 당하게 되고 차석 지휘관이 부재했던 오스만군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백병전에서 밀린 오스만군은 육지로 퇴각하게 되지만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레판토 해전의 중앙 전투



출처 : wikipedia



교황과 베네치아 연합군의 지휘관 돈 후안과 오스만의 알리파샤의 중앙 전투가 시작됩니다.


양 군의 함선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뒤따르던 함선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양 측의 사령관이 모두 출동하는 치열한 백병전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오스만군이 밀어부쳐 돈 후안의 함선까지 올라타 공격을 하지만 화승총에 밀려 후퇴하게 되고


기세가 오른 연합군이 오스만의 함선에 올라타 오스만의 총지휘관 알리파샤를 사살하며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알리파샤가 전사한 후 사기가 떨어진 오스만군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레판토 해전의 남쪽 전투



출처 : wikipedia



레판토 남쪽은 제노바의 안드레아 도리아와 오스만의 울리치 알리가 맞붙게 됩니다.


북쪽과 중앙 전투와는 다르게 남쪽은 유럽 연합군이 오스만군에게 밀리고 있었습니다.


유럽 연합군의 16척의 배가 오스만에 포위되어 백병전이 시작되었고 수적으로도 열세인 상황이었습니다.



유럽 연합군의 배에 오스만군이 진입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 한 척의 배의 선장이 자신의 배의 화약고를 터트리며 자폭을 하게 됩니다.


북쪽과 중앙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것을 확인한 지원군 스페인 함대는 남쪽을 지원하게 되고,


오스만군은 전투에서 패한 채 후퇴하게 됩니다.



레판토 해전 결과



오스만군은 갤리선 118척이 침몰되고 117척이 연합군에 나포되면서 오스만의 해군이 와해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레판토 해전의 패배로 팽창을 멈추게 됩니다.


유럽 사회에서는 더 이상 오스만 제국이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으며,


개방적 정책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무역으로 대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나라로써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레판토 해전이 끝난 후 유럽 연합군은 다시 와해되었으며,


베네치아는 적이면서 파트너였던 오스만 제국과 강화 협정을 맺게 됩니다.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스페인은 신항로를 개척하며 세계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유럽의 무역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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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등장과 성장은 유럽 사회에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천 년의 도시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렸으며,


철옹성의 요새 로도소를 함락시키며 지중해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로도스 기사단이 오스만에 패하며 몰타로 이동하여 정착하게 되고,


오스만은 유럽으로 들어가는 지중해 거점인 몰타에서 몰타기사단에게 패하며 거점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지중해를 향한 오스만 제국의 야욕은 멈추지 않았으며,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뭉쳐 대항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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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림 2세와 키프로스



슐레이만 대제의 아들 셀림 2세가 술탄에 등극하며 지중해 패권에 도전합니다.


셀림 2세는 베네치아의 키프로스섬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키프로스섬을 반환할 것을 요구합니다. 


키프로스섬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와 로마로 연결되는 지리적 요충지로 지중해의 주요 항로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키프로스 반환 요구는 유럽 사회를 긴장시킵니다.





유럽 연합군



오스만 제국의 도발로 유럽 중 특히 지중해 연안의 왕국들은 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교황, 스페인, 베네치아, 몰타를 주축으로 한 일종의 연합군이 등장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의 시칠리아 침공



출처 : wikipedia



공격의 기회를 엿보던 오스만 제국은 베네치아의 조선소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접한 후 시칠리아로 진격합니다.


조선소의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으며 베네치아의 조선공들이 신속히 화재를 진압하였지만,


몰타 전쟁에서의 패배를 되갚아 주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오스만 제국은 그대로 출격하게 됩니다.



오스만 군대는 키프로스의 주요 도시인 니코시아와 파마구스타를 공격합니다.


니코시아는 7개월의 항전 끝에 함락이 됩니다.


파마구스타는 1년여 동안 항전을 이어나가지만 유럽 연합군의 파병이 늦어지면서,


이전의 슐레이만이 제시했던 항복 조건에 동의하며 항복을 선언합니다.



슐레이만의 항복 조건이란, 몰타섬 전쟁 당시 기사단이 항복하면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항복을 받은 셀림 2세는 말을 바꾸어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전원 처형을 지시합니다.



이 사건으로 유럽 사회는 극도의 분노를 느끼며 16세기 유럽 최대의 해전 레판토 해전의 발단이 됩니다.



갈레아스



출처 : wikipedia



유럽 연합군의 신무기 갈레아스는 레판토 해전에서 매우 중요한 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던 베네치아는 초대형 무역선인 갤리선을 전쟁용으로 개조하게 됩니다.


일반 갤리선과 형태가 다른 갈레아스는 선체가 높아 백병전이 불가능했습니다.


선체 전부를 대포로 둘러 쌓았으며 위치를 가리지 않는 대포 공격은 오스만 제국을 공포에 떨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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