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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와 신교의 다양한 문제가 얽혀 시작된 30년 전쟁은 점점 치열해집니다.



명장 틸리의 활약으로 보헤미아와 팔츠를 점령한 구교측 세력은


슈타트론 전투에서 신교 세력인 크리스티안을 궤멸시키며 승기를 잡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신교 세력 중 덴마크군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빠르게 변화하여 갑니다.


▶ 보헤미아-팔츠 전투 확인하기



덴마크의 참전



출처 : wikipedia



유럽 전역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당시 덴마크 역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덴마크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는 홀슈타인의 영주이기도 했습니다.


북해를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신교의 중심세력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는 


라인강 유역부터 북해로 이어지는 지역을 점령하면서 덴마크 왕국을 세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로마신성제국의 세력이 세력을 넓혀감에 따라 크리스티안 4세는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덴마크의 참전으로 신교의 잔여 세력이었던 할버슈타인의 크리스티안과 용병 만스펠트가 다시 연합하게 됩니다.





발렌슈타인의 등장



출처 : wikipedia



덴마크의 참전으로 위기감을 느낀 구교에 보헤미안의 몰락한 귀족 출신인 발렌슈타인이 구원군으로 등장합니다.


뛰어난 사업 수단을 지닌 발렌슈타인은 돈은 많았지만 명성이 없었으며,


자신의 이름을 유럽에 알리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군수 공장을 운영하며 자신의 군대를 키우던 발렌슈타인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에게


군대를 인정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데사우 다리 전투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 지역인 안할트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구교의 발렌슈타인군 2만과 신교의 만스펠트 1만 5천의 군대가 데사우 다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데사우에 먼저 도착한 발렌슈타인은 다리 건너편에 요새를 짓고 방어전에 돌입합니다.


병력도 적고 신교의 계속된 패배로 용병군의 입지가 낮아진 만스펠트는 요새 전면 돌파를 시도하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전투 경험이 없던 발렌슈타인을 무시한 만스펠트의 본진이 요새로 진격을 하고,


만스펠트는 데사우 다리 전투에서 4천명이 병사를 잃게 됩니다.


만스펠트는 전투에서 패전하며 유고슬라비아 지방으로 도주하게 됩니다.



루터 전투



출처 : wikipedia



발렌슈타인과 만스펠트의 데사우 다리 전투에서 구교의 발렌슈타인이 승리하며 만스펠트를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발렌슈타인은 만스펠트를 추격하며 같은 구교의 명장 틸리에게 약 4천의 병사를 지원해줍니다.


구교의 틸리와 신교의 덴마크 크리스티안 4세의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덴마크군은 작센군과 연합하여 틸리에 대항하지만 대포와 화약의 관리가 잘 되지 않은 덴마크군은 밀리게 됩니다.


틸리군은 반대로 대포와 화약의 관리가 잘 되어 있었으며 화약과 기병, 보병의 연합 전술로 신교 세력을 제압합니다.


작센군과 덴마크군은 큰 피해를 입으며 퇴각하게 됩니다.



데사우 다리 전투에 이어 루터 전투에서도 구교가 승리를 하게 되며, 


신교는 구교에 한 번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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