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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틴의 뿔 전투로 십자군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약 2만 5천명의 십자군 군대 중 3,000명 정도만 살아남아 도망치게 되고,


십자군의 사령관이었던 기는 살라딘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틴의 뿔 전투는 십자군에게 이슬람의 위력을 과시한 첫 전투이자, 


살라딘을 이슬람의 영웅으로 만들어준 중요한 전투입니다.


하틴의 뿔 전투 이후, 에데사를 함락시키며 수니파 세력을 통합한 장기 왕조의 견제를 받던 살라딘은


이슬람 각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이슬람 세력을 통합하고 장기 왕조까지 아우르는 일인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 하틴의 뿔 전투 확인하기



2차 십자군 전쟁, 발리안과 예루살렘 전투



출처 : wikipedia



12세기의 십자군 귀족이었던 발리안 디블랭은 예루살렘 왕의 제후였습니다.


1177년 몽기사르 전투에서 보두앵 4세를 보좌하며 살라딘의 2만 6천명의 이슬람 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기의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던 발리안은 하틴의 뿔 전투에 참전하지만 간신히 탈출하게 됩니다.


발리안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처자식을 데리고 트리폴리로 피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살라딘에게 부탁했고 살라딘은 다시는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지 않는 조건으로 이를 허락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도착한 발리안은 주교와 시민들의 압력과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십자군의 지도자가 됩니다.


본의 아니게 살라딘과 맞서야 한 발리안은 살라딘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의 가족들은 예루살렘을 탈출시킨 뒤 살라딘과의 일전을 준비합니다.



살라딘 군대의 공격에 헤롯의 문이 허물어지게 되고 결사항전한 십자군이 한계에 다다르자 발리안은 협상을 제안합니다.


발리안은 예루살렘의 십자군과 가족들을 무사히 피신시켜주는 조건으로,


예루살렘의 이슬람인들을 학살하지 않고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조건을 내걸게 됩니다.


관용의 정책으로 이슬람을 통합하고 세력을 확장시켜야 했던 살라딘은 이를 수락합니다.



예루살렘은 살라딘의 이슬람 세력에 의해 탈환되며, 2차 십자군 전쟁은 십자군의 패배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발리안의 뛰어난 외교술과 살라딘의 혜안과 정치술의 만남은 후대에도 큰 감명과 교훈을 주게 됩니다.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 



살라딘은 이슬람 소수 부족인 쿠르드족의 장군 출신으로 이집트와 시리아의 술탄이었습니다.


장기의 아들이었던 누르 앗딘이 장기 왕조를 이어 받게되며,


예루살렘 왕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보호해야 했던 누르 앗딘은 살라딘의 삼촌을 사령관으로 파견합니다.



살라딘의 삼촌이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살라딘은 이집트의 통치권자가 되었으며, 영향력을 키워가게 됩니다.


세력이 커져가는 살라딘을 견제하기 위해 장기 왕조에서는 암살시도까지 하지만 살라딘은 살아남게 됩니다.


점차 이슬람 세력을 통합하며 세력을 키우던 살라딘은, 


십자군과의 하틴의 뿔 전투로 인해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이슬람 세력을 본격적으로 통합하게 됩니다.



살라딘의 등장은 유럽 사회에서는 큰 공포로 다가왔으며,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정책, 포용력과 관대함 등은 살라딘을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3차 십자군을 이끈 사자왕 리처드마저 살라딘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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