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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와 장강에서 발생한 중국의 문명은


수 많은 분열과 통일을 반복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라와 상나라 그리고 주나라를 지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되며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중국의 정체성을 확립한 한나라를 거쳐


5호 16국 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진나라부터 위진남북조 시대 알아보기

▶중국 신화부터 춘추전국시대 알아보기



수나라



wikimedia



5호 16국 시대와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는 중국 전역에 270년 동안 지속됩니다.



581년, 북주의 대장군 양견이 수나라를 건국하고 중국을 통일하며 혼돈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수나라 양제가 문제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하게 되고,


양제는 하북에서 강남까지 연결하는 대운하 건설과 수도 대흥성을 건축하는 무리한 토목 공사를 진행합니다.


또한 문제가 중단한 고구려 원정을 3번에 걸쳐 실행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이러한 대규모 토목 공사와 고구려 원정 실패는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반란을 확대시키게 됩니다.

 


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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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말기의 반란으로 수나라는 세력이 약해졌으며 혼란한 시기가 도래합니다. 



681년, 이연은 아들 이세민의 활약으로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자로 등극하며 당나라를 건국합니다.



아버지 이연에 이어 이세민은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당나라 황제 태종에 즉위하게 됩니다.


형제들을 죽이고 또한 아버지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본인이 황제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이세민은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돌보는 당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태평성대를 누리던 당나라는 비단길까지 점령하며 동북 아시아는 물론 동남 아시아와 중앙 아시아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며 당시 최고의 강성한 나라로 성장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8세기 지방 절도사들의 반란과 9세기 황소의 난 그리고 강력한 세력으로 발전한 티벳의 침략으로


당나라는 세력이 약해지며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907년 당나라는 주전충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5대 10국 시대



907년, 당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은 다시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황하를 중심으로 화북을 지배했던 5개의 왕조를 5대라 부르며


화중과 화남을 지배했던 지방의 정권을 10국이라 부릅니다.



5대

 후당

 후량

후주 

후진 

후한 

 10국

 민

오 

오월 

형남 

 전촉

후촉 

남한 

북한 

남당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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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10국의 수 많은 세력들과 사람들이 천자임을 자칭하며 세력 싸움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던 중 후주의 장군 조광윤이 황제의 선양을 받아 송나라를 건국하고,


조광윤의 동생 송 태종 조광의가 960년 중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송나라는 세계 최초로 지폐로 된 화폐를 발행했으며 화약이 발달하고


나침반을 사용하여 동서남북의 방향을 정확히 알아낼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합니다.


토론이 활발했으며 예술품의 교류 역시 활발한 역동적인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문치주의를 표방한 송나라는 군사력이 약했으며, 


거란족의 요나라의 침략에 시달리자 신흥 강국인 여진족의 금나라와 화친하게 됩니다.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키며 송나라를 위협할 만큼 세력이 커지게 됩니다.


금나라의 세력이 커지자 위기를 느낀 송나라는 여진족 잔당과 힘을 합치게 되지만,


금나라에 밀려 양쯔강 이남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한편 금나라의 북쪽에는 거대한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데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입니다.


1234년, 몽골군은 금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켰으며,


송나라 역시 1279년 쿠빌라이 칸의 몽골군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 칭기즈칸의 죽음과 몽골군의 남송, 금나라 정복 알아보기

▶ 칭기즈칸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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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와 호라즘 정복을 마친 칭기즈칸은 금나라 정벌에 착수합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야망이 꿈틀댑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1년이 걸리는 땅을 자식들에게 남겨주려는 칭기즈칸은


금나라 정벌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서방 진출의 주요 거점이었던 서하인을 몰살하라는 유언을 남긴 칭기즈칸은 평소 적대적이었던 서하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함으로써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서하 지역을 베이스캠프로 확보하려는 의도로 추정됩니다.


▶ 서하 정복과 호라즘 정복 확인하기

▶ 칭기즈칸, 테무친의 성장 확인하기





몽골 금나라 정벌



출처 : wikipedia



1211년에 시작된 금나라 정벌은 칭기즈칸이 죽을때까지 지속되었으며, 1234년이 되어야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칭기즈칸의 몽골 통일 전, 몽골족을 가혹하게 억압했던 금나라를 치기 위해 남송에 동맹을 제안합니다.


금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쫓겨났던 남송에게는 몽골군의 제안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몽골군은 1213년에 허베이성의 선화를 정복하고 산서성의 태원과 린펀을 차례로 정복합니다.


이후 하북과 산둥 평원을 가로질러 하간과 제남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경으로 진격하여 북경을 포위하고 공격하던 중 금나라의 화의를 받아들여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받고 물러납니다.



금나라는 북경을 버리고 개봉으로 천도하게 되고 몽골군은 다시 북경을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


칭기즈칸은 금나라의 정벌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칭기즈칸의 후계자인 톨루이가 1234년 정복을 마무리합니다.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중요한 전투는 삼봉산 전투로 몽골군이 금나라의 주력군을 격파한 전투입니다.


보병과 기병의 연합 전술에 능하고 유목 생활을 했지만 농경 생활에도 적응이 빨랐던 금나라의 여진족은,


금나라의 건국과 중국 대륙을 차지한 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며 용맹한 기운마저 잃어가게 됩니다.



1234년 금나라는 몽골과 남송의 연합군에 의해 대패하고 금나라의 황제 애종은 도망친 후 자살하게 됩니다.



이로써 금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몽골 남송 정벌



출처 : wikipedia



칭기즈칸의 막내 아들인 툴루이의 아들인 쿠빌라이,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남송 정벌에 착수합니다.



몽골에 투항한 남송의 장군 유장은 양양성을 먼저 공격한 후 배를 타고 수도로 진격하라는 조언을 하고


몽골군은 한족 출신의 수군을 동원하여 양양성을 포위한 후 공격하게 됩니다.


양양성과 번성을 포위하여 공격하면서 동시에 수군을 양성하여 대륙 정벌을 차근히 준비해 나갑니다.


번성을 함락시킨후 회회포를 설치해 양양성을 포격하였으며 


고립무원이 된 양양성의 수비 대장 여문환이 몽골군에 투항하면서 양자강 일대의 군벌 라인이 모두 항복하게 됩니다.



약 50여 년간의 남송의 항거는 끝이 나게 되고 몽골군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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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굽타산에서 패했지만 칭기즈칸의 군대는 강력한 군대로 거듭납니다.



단숨에 무패의 군대로 진화한 몽골군은 본격적인 몽골 통일 전쟁에 나섭니다.


케레이트족의 토그릴 완 칸을 굴복시키며 케레이트족을 노예와 병졸로 삼습니다.


또한 자무카와 연합 세력을 구축한 나이만족을 통합합니다.


1206년 테무친은 모든 스텝 지역을 통일하고 칭기즈칸으로 추대됩니다.


▶ 테무친의 성장 확인하기

▶ 몽골족 확인하기



몽골군의 대외 원정 시작, 서하 정복



출처 : wikipedia



칭기즈칸은 티베트 종족에 속하는 탕구트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인 서하를 침략합니다.


서하는 1202년부터 칭기즈칸의 몽골군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받게 됩니다.



1207년 몽골군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수도는 함락될 위기에 처하게 되며,


서하의 황제 양종은 몽골에 항복하며 자신의 딸을 칭기즈칸과 혼인시키게 됩니다.



1226년 칭기즈칸의 서정 참가를 거부하면서 몽골의 재침입으로 인해 멸망합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상로를 찾아 정복 전쟁을 펼친 북유럽의 바이킹과 같이,


몽골군은 실크로드의 길을 따라 서쪽으로 진격하게 됩니다.


▶ 바이킹 시대 확인하기





호라즘 정복



출처 : wikipedia



서하를 정복한 칭기즈칸은 서쪽으로 진격해 호라즘에 다다르게 됩니다.


호라즘은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서쪽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로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입니다.


수도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아랄해 남쪽에 위치한 투르크계 이슬람 왕국이었습니다. 


호라즘은 동서 무역으로 막강한 부와 힘을 차지하며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 이란 환율, 화폐, 이란혁명 확인하기



칭기즈칸은 통상을 요구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제안하지만, 


호라즘은 칭기즈칸의 보호를 받던 이슬람 상단 450명을 몰살시키고 사신을 죽이거나 쫓아내면서 전쟁이 발발합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죽이라는 명을 받은 몽골군은 호라즘으로 진격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호라즘 군대는 타지크족 보병과 투르크족 기병이 혼합 편제되어 있었습니다.


호라즘 군대는 기동성이 떨어지는 중기병 중심의 군대였으며,


달리는 말에서 활을 쏘는 기사가 가능했지만 몽골군에 비해 유연성은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40만의 군대를 자랑하던 호라즘의 병력은 약 15만의 몽골군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의 맏아들 주치가 이끄는 몽골군은 북쪽 길로 진격합니다.


북쪽으로 진격한 몽골군의 선봉대는 목초지를 모두 불태우며 약탈을 시작합니다.


또한 서쪽으로 크게 우회한 몽골군의 주력부대는 낙타를 이용하여 사막을 건너 호라즘 서부로 진격을 합니다.


병력을 분산시킨 몽골군은 호라즘의 1선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고원을 넘어 남부를 습격합니다. 



중앙 방어에 집중하던 호라즘은 몽골군의 전 방위 전격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수도 사마르칸트를 지키던 최정예 기병인 터키계 유목민 캉글리족마저 항복하며 호라즘은 정복당하게 됩니다.



호라즘의 정복으로 몽골군은 세계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서쪽으로 거침없이 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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