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와 호라즘 정복을 마친 칭기즈칸은 금나라 정벌에 착수합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야망이 꿈틀댑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1년이 걸리는 땅을 자식들에게 남겨주려는 칭기즈칸은


금나라 정벌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서방 진출의 주요 거점이었던 서하인을 몰살하라는 유언을 남긴 칭기즈칸은 평소 적대적이었던 서하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함으로써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서하 지역을 베이스캠프로 확보하려는 의도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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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금나라 정벌



출처 : wikipedia



1211년에 시작된 금나라 정벌은 칭기즈칸이 죽을때까지 지속되었으며, 1234년이 되어야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칭기즈칸의 몽골 통일 전, 몽골족을 가혹하게 억압했던 금나라를 치기 위해 남송에 동맹을 제안합니다.


금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쫓겨났던 남송에게는 몽골군의 제안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몽골군은 1213년에 허베이성의 선화를 정복하고 산서성의 태원과 린펀을 차례로 정복합니다.


이후 하북과 산둥 평원을 가로질러 하간과 제남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경으로 진격하여 북경을 포위하고 공격하던 중 금나라의 화의를 받아들여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받고 물러납니다.



금나라는 북경을 버리고 개봉으로 천도하게 되고 몽골군은 다시 북경을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


칭기즈칸은 금나라의 정벌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칭기즈칸의 후계자인 톨루이가 1234년 정복을 마무리합니다.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중요한 전투는 삼봉산 전투로 몽골군이 금나라의 주력군을 격파한 전투입니다.


보병과 기병의 연합 전술에 능하고 유목 생활을 했지만 농경 생활에도 적응이 빨랐던 금나라의 여진족은,


금나라의 건국과 중국 대륙을 차지한 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며 용맹한 기운마저 잃어가게 됩니다.



1234년 금나라는 몽골과 남송의 연합군에 의해 대패하고 금나라의 황제 애종은 도망친 후 자살하게 됩니다.



이로써 금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몽골 남송 정벌



출처 : wikipedia



칭기즈칸의 막내 아들인 툴루이의 아들인 쿠빌라이,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남송 정벌에 착수합니다.



몽골에 투항한 남송의 장군 유장은 양양성을 먼저 공격한 후 배를 타고 수도로 진격하라는 조언을 하고


몽골군은 한족 출신의 수군을 동원하여 양양성을 포위한 후 공격하게 됩니다.


양양성과 번성을 포위하여 공격하면서 동시에 수군을 양성하여 대륙 정벌을 차근히 준비해 나갑니다.


번성을 함락시킨후 회회포를 설치해 양양성을 포격하였으며 


고립무원이 된 양양성의 수비 대장 여문환이 몽골군에 투항하면서 양자강 일대의 군벌 라인이 모두 항복하게 됩니다.



약 50여 년간의 남송의 항거는 끝이 나게 되고 몽골군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비록 굽타산에서 패했지만 칭기즈칸의 군대는 강력한 군대로 거듭납니다.



단숨에 무패의 군대로 진화한 몽골군은 본격적인 몽골 통일 전쟁에 나섭니다.


케레이트족의 토그릴 완 칸을 굴복시키며 케레이트족을 노예와 병졸로 삼습니다.


또한 자무카와 연합 세력을 구축한 나이만족을 통합합니다.


1206년 테무친은 모든 스텝 지역을 통일하고 칭기즈칸으로 추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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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의 대외 원정 시작, 서하 정복



출처 : wikipedia



칭기즈칸은 티베트 종족에 속하는 탕구트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인 서하를 침략합니다.


서하는 1202년부터 칭기즈칸의 몽골군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받게 됩니다.



1207년 몽골군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수도는 함락될 위기에 처하게 되며,


서하의 황제 양종은 몽골에 항복하며 자신의 딸을 칭기즈칸과 혼인시키게 됩니다.



1226년 칭기즈칸의 서정 참가를 거부하면서 몽골의 재침입으로 인해 멸망합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상로를 찾아 정복 전쟁을 펼친 북유럽의 바이킹과 같이,


몽골군은 실크로드의 길을 따라 서쪽으로 진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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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즘 정복



출처 : wikipedia



서하를 정복한 칭기즈칸은 서쪽으로 진격해 호라즘에 다다르게 됩니다.


호라즘은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서쪽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로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입니다.


수도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아랄해 남쪽에 위치한 투르크계 이슬람 왕국이었습니다. 


호라즘은 동서 무역으로 막강한 부와 힘을 차지하며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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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은 통상을 요구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제안하지만, 


호라즘은 칭기즈칸의 보호를 받던 이슬람 상단 450명을 몰살시키고 사신을 죽이거나 쫓아내면서 전쟁이 발발합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죽이라는 명을 받은 몽골군은 호라즘으로 진격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호라즘 군대는 타지크족 보병과 투르크족 기병이 혼합 편제되어 있었습니다.


호라즘 군대는 기동성이 떨어지는 중기병 중심의 군대였으며,


달리는 말에서 활을 쏘는 기사가 가능했지만 몽골군에 비해 유연성은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40만의 군대를 자랑하던 호라즘의 병력은 약 15만의 몽골군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의 맏아들 주치가 이끄는 몽골군은 북쪽 길로 진격합니다.


북쪽으로 진격한 몽골군의 선봉대는 목초지를 모두 불태우며 약탈을 시작합니다.


또한 서쪽으로 크게 우회한 몽골군의 주력부대는 낙타를 이용하여 사막을 건너 호라즘 서부로 진격을 합니다.


병력을 분산시킨 몽골군은 호라즘의 1선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고원을 넘어 남부를 습격합니다. 



중앙 방어에 집중하던 호라즘은 몽골군의 전 방위 전격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수도 사마르칸트를 지키던 최정예 기병인 터키계 유목민 캉글리족마저 항복하며 호라즘은 정복당하게 됩니다.



호라즘의 정복으로 몽골군은 세계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서쪽으로 거침없이 질주합니다.




칭기즈칸은 세계 역사를 바꾼 몽골 제국의 건국자입니다.



1206년 테무친이 칭기즈칸으로 추대 되면서 몽골 대제국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368년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면서 몽골 세력은 장성 이북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14세기 중후반 몽골 제국은 붕괴되면서 쇠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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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테무친의 어린 시절



출처 : wikimedia



칭기즈칸의 어린 시절 이름은 보르지긴 테무친입니다.


테무친은 강철, 대장장라는 뜻으로 몽골 보르지긴 씨족 부족장 예수게이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예수게이가 타타르 부족과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족장의 이름을 따서 테무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테무친은 어린 시절 용기라트 부족의 보르테와 약혼을 올리게 됩니다.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오랜 시절 동안 불화 관계에 있던 타타르족에 의해 독살을 당하게 되고,


어린 테무친에게 부족을 이끌 힘이 없다고 판단한 부족민들은 하나 둘씩 테무친을 떠나게 됩니다.  



테무친은 타이치우드족의 습격에 포로가 되면서 노예가 되어 어린 시절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테무친은 갖은 고생 끝에 포로에서 탈출하지만 추격대에 쫓기게 됩니다.


하지만 추격 대원 중 한 명인 치라운이 테무친을 못 본 척 눈감아 주어 살아나게 되고 테무친은 치라운을 따라가게 됩니다.  


치라운은 자신을 따라온 테무친을 도와주게 되고 후에 칭기즈칸의 수하가 됩니다.






테무친의 성장과 테무친의 참모들



테무친은 풀뿌리와 들쥐로 목숨을 연명하며 고난의 시기를 보냅니다.


점차 몽골 고원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며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며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테무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메르키트족은 테무친의 아내 보르테를 납치하지만,


테무친은 아버지인 예수게이와 의형제를 맺었던 케레이트족의 토그릴 완 칸에게 사정을 말하여 보르테를 찾아옵니다.


테무친은 결혼 예물인 모피를 토그릴 완 칸에게 선물했으며, 


토그릴 완 칸은 흩어져 있던 테무친의 부족민들을 모아주고 2만의 병력을 제공해 줍니다.



테무친의 사람들

 이름

 관계

 내용

 데이 세첸

 장인

 딸인 보르테와 테무친의 정혼 약속을 지키고 후원자의 역할을 함

 토그릴 완 칸

 예수게이의 의형제

 2만의 병력을 제공하며 흩어진 부족민들을 모아줌

 자무카

 어릴적 의형제

 테무친의 라이벌

 제베

 친위부대 누케르

 칭기즈칸을 암살하려던 적장에서 칭기즈칸의 장군으로 등용

 수부타이

 친위부대 누케르

 지략가, 전술형 장군



굽타산의 깃발 전투



출처 : wikimedia



테무친의 세력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자 케레이트족의 완 칸의 아들들이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결국 케레이트족과 자무카가 테무친을 배신하게 되며 칭기즈칸을 공격하게 됩니다.



일생의 최대 위기를 맞은 칭기즈칸은 한밤중에 대탈출을 시도하고 산악 지대에서 따라잡혀 전투로 이어지게 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칭기즈칸은 망구트족의 전사에게 굽타산 위에 올라 칭기즈칸의 깃발을 꽂으라 명령합니다.


깃발은 칭기즈칸 부대의 사기를 끌어 올렸으며 결사항전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칭기즈칸 부대의 가능성과 서로간의 신뢰가 쌓이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굽타산 전투는 강력한 몽골군 탄생의 밑거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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