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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연합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영화 300의 배경으로도 유명합니다.


현대 스포츠 마라톤의 기원이 되었다고 알려진 마라톤 전투 역시 페르시아 전쟁의 전투입니다.


페르시아는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광활한 영토와 막강한 군사력,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 도시 국가에 패하게 되며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페르시아 제국



출처 : wikimedia commons



페르시아 제국은 오늘날 이란의 영토를 근거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중동과 터키,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까지 진출했던 대제국입니다.


페르시아의 어원은 고대 이란계 부족 파르스와 이들이 살던 이란 남서부 지역 파르샤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 제국보다도 500년 앞선 세계 최초의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아우르기 위해 왕의 눈, 왕의 길, 왕의 귀의 통치 방법을 사용합니다.


기원전 5세기, 다리우스 1세에 의해 건설된 고대의 고속도로 왕의 길은 페르시아 왕도로도 불립니다.


약 2,700km의 왕의 길에는 중간 중간 역참을 설치 하였으며 이 길을 통해 이동한 관료들이 왕의 눈과 귀가 됩니다.


왕의 허가증을 지닌 전령은 왕의 길을 통해 약 2주 이내에 제국의 전역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왕의 길은 제국의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감시와 스파이 활동을 함께 수행하는 고대 최고의 교통망이자 통신망입니다.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아우르기 위해 개방적인 정책을 사용하며 제국으로의 발전을 이루어 냅니다.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



오늘날 터키와 시리아 주변의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에서 페르시아에 대한 반란이 일어납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들은 페르시아가 임명한 통치자를 축출하면서 그리스 본토의 도시 국가들로 지원을 받습니다.


그리스 도시 국가인 아테네와 에레트리아 군대의 지원으로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 국가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북서부 지역의 최대 거점 도시 사르디스를 습격하여 페르시아의 신전과 도시를 불태워 버립니다.


반란을 제압한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1세는 배후인 그리스를 침공할 계획을 세웁니다.



마라톤 전투



출처 : wikimedia commons



페르시아의 1차 침공은 폭풍을 만나 해군 선단이 몰살당하면서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본격적인 전투는 2차 침공인 마라톤 전투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그리스 도시 국가의 맹주였던 아테네는 페르시아 침공 소식에 스파르타에 원군 요청을 하지만,


당시 만월의 종교 축제 기간이었던 스파르타는 원군 요청을 거절하면서 아테네는 홀로 페르시아군을 맞게 됩니다.


마라톤 평야에 상륙한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고 급하게 아테네로 돌아와 페르시아 함대를 막아내며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재 침공



출처 : wikimedia commons



마라톤 전투 이후 10년이 지나고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를 다시 침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300의 배경인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나스와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는 모두 전사하게 됩니다.


에피알테스라는 그리스인이 페르시아 대군에게 테르모필레 협곡을 우회하는 샛길을 알려주게 되고


페르시아 군대는 아테네로 진격하여 아테네에 입성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에 입성했을때 아테네는 이미 비어있었으며,


아테네의 명장 테미스토클레스의 작전으로 시민들과 병력은 살라미스 섬으로 이주해 있었습니다.



세계 4대 해전, 살라미스 해전



출처 : wikimedia commons



마라톤 전투에 참가했던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군이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때,


앞으로 페르시아군의 재침공이 있다면 육지에 상륙하기전에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해군 양성을 준비합니다.


막대한 자금력이 필요했던 해군 양성에 그리스 사람들은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라우레이온에서 대규모 은 광산이 발견되면서, 


그리스인 설득에 성공한 테미스토클레스는 자금을 확보하여 해군 양성에 돌입하게 됩니다.


아테네를 그리스 제일의 해군 국가로 만들어 이후 해외 무역과 식민지 확보 등 아테네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페르시아의 군선은 그리스의 갤리선에 의해 괴멸당하게 되고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살라미스 해전의 다음해, 스파르타 레오디나스 왕의 조카인 파우사니아스 왕이 지휘하는 5만의 그리스 연합군이


플라타이아 평원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파하며 에게 해에서의 페르시아 영향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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