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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은 조선으로 향합니다.



일본은 1592년 4월 14일 약 700척의 배를 이끌고 부산을 침략합니다.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달라는 정명가도를 앞세워 약 20만명의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합니다.


무서운 기세로 북진한 일본군은 약 20일만에 한양을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동북아의 정세



출처 : wikipedia



당시 중국은 명나라로 13대 신종 황제 시대 중반부터 쇠퇴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일본은 전국 시대의 내전 속에 사회적 변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 시대를 통일하게 되고 이는 부의 증가와 국력 성장을 일으킵니다.,


통일된 일본 각지로 특산품과 자원이 유통되면서 부가 증가하게 됩니다.


100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대규모 전투에 유용한 진법이 발달했고, 


전술 연마와 신무기 수입, 개발 등 군사력이 성장하게 됩니다.



조선은 당파 싸움으로 인해 조정이 혼란스럽고 민심이 어지러웠습니다.


1590년 일본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서인인 정사 황윤길과 동인인 부사 김성일을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합니다.


하지만 전쟁 수행 능력 유무와 전쟁 지지 여론 등의 일본의 구조 파악에 실패하게 됩니다.



1951년 히데요시는 통신사 편에 침략의 의도가 분명한 정명가도의 문자를 조선에 답서로 보내지만


서인인 황윤길은 침략이 있을 것임을, 동인인 김성일은 침략이 없을 것임을 주장하며 의견이 갈리게 됩니다. 


조선은 상반된 주장과 상관없이 전쟁을 준비하지만 200여년간 지속된 평화로 인한 병농 일치 예비군 체제는


100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인해 실전으로 단련된 일본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조선의 군사 제도 부병제와 일본의 군사 제도



출처 : wikimedia



당시 조선의 군사 제도는 부병제로 평시에는 농민, 전시에는 군인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들의 훈련은 제식 훈련만 실시한 정도였으며 보병, 기병, 포병 등의 편제 비율이 맞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또한 재정이 열악하여 사실상 편제 훈련의 의미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가난한 백성은 군역을 나간 병사의 농지에서 일을 하거나 군비를 지원하는 봉족으로 배속됩니다.


돈 있는 양인들은 군역을 대신해 돈을 지불합니다.


돈 있는 사람에게는 군역을 지게 하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일을 하게 하는 제도적인 문제점이 큰 시스템이었습니다.



일본은 군인과 농민이 따로 존재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전문 군인의 시대였으며 16세기 전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는 전문 군인을 양성하던 시기였습니다.


군인은 전쟁을 위한 훈련에만 열중할 수 있었고 농민은 전쟁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농병일치제인 조선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으며 백성의 고충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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