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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대전은 관도 대전, 이릉 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전투로 꼽힙니다.



당시 최고의 세력인 조조를 유비와 손권이 연합하여 싸운 전투입니다.


현재 적벽이 정확히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으며,


양쯔 강 연안의 절벽으로 5군데의 후보지가 있다고 합니다.


▶ 삼국지 3대 전투 확인하기





당시의 오나라 상황



양주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오나라는 풍부한 수량과 비옥한 토양으로 내정이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바다처럼 넓은 양쯔강은 오나라의 천혜의 방어선으로 그 내부는 토호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수군에 강했던 오나라는 중원에서의 세력 다툼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될 일이 없었으며,


그로 인해 지방 토호와 군벌로 분열이 되어 있던 내부를 강력히 결속시킬 명분이 없어 세력 통합이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양주 지역에는 10만의 병사가 있었는데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 오나라는 3만여명의 병사만 동원했을 정도로


지방 토호와 군벌 사이에 거리감이 있었다고 여겨지며 유비군 1만, 유기군 1만으로 총 5만의 병사가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적벽 대전



출처 : wikipedia



조조의 10만군은 적벽에 도착하여 강을 사이에 두고 오나라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오라나가 선제 공격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조조는 방심을 하게 되고,


위나라군이 강을 건너 오나라 영토에 상륙하기 전 전투를 끝내려는 오나라군은 선제 공격을 감행합니다.



주유가 좌독, 정보가 우독이 되어 유비의 군대와 함께 적벽으로 진군하여 조조군을 크게 격파합니다.


제갈량과 주유의 화계는 조조군의 배를 대부분 불태웠으며 조조군은 유래없는 패배를 기록하게 됩니다.



적벽 대전 이후



조조는 허창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유비와 오나라의 군대는 위나라를 추격하였으며 조인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면서 주유는 남군을 차지하게 됩니다.


유비는 무릉, 영릉, 장사, 계양 4군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형주 땅을 오나라와 나누어 갖게 됩니다.



유비와 제갈량의 가능성과 두려움을 알고 있던 주유는 촉을 정벌할 것을 제안하고 전쟁 준비에 돌입하지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면서 천하 삼분 지계가 이루어집니다.  



적벽 대전의 허와 실



1. 삼국지 정사에 기록된 적벽 대전의 양이 매우 적어 적벽 대전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포장되어졌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2. 태사자가 적벽 대전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태사자는 적벽 대전 이전 사망했습니다.


3. 방통의 연환계는 허구라고 합니다.


4. 조조가 퇴각한 원인이 화계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합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퇴각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조가 퇴각하면서 위나라의 배에 불을 일부러 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5. 정사에는 황개가 일부러 항복을 하여 짚을 실은 배로 돌진해 위나라의 배에 불을 붙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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