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참전은 30년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 역시 구교의 명장 틸리에게 무릎을 꿇으며 신교의 전세 역전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구교와 신교의 대립은 수 많은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었습니다.


유럽 전역의 국가, 왕, 귀족들의 갈등과 연합 


그리고 외교, 정치, 경제가 관계된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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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의 독주



구교와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보헤미아 왕으로 등극했던 페르디난트 2세는, 


프라하 투척사건 당시 보헤미아에 부재중이었으며 


프라하 투척사건으로 보헤미아를 장악한 신교의 지원을 받은 프리드리히 5세가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마침 사망하게 되고 페르디난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됩니다.



황제가 되었지만 보헤미아의 왕 자리를 빼앗긴 페르디난트는 프리드리히 5세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구교와 신교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백산 전투를 시작으로 데사우 다리 전투와 루터 전투까지 신교는 구교에 단 한번도 승리를 쟁취하지 못한채


구교의 일방적인 승리로 모든 상황은 정리되는 듯 했습니다.



신교의 세력을 제압한 페르디난트는 1629년 토지 반환령을 명령하여 빼앗긴 카톨릭 교인들의 토지를 돌려받게 합니다. 


페르디난트의 토지 반환령은 경제 공황을 야기시키게 되고 유럽의 혼란을 야기시킵니다.


할베르슈타트 교구에 자신의 아들을 임명하는 등 자신의 측근들을 구교 세력의 중심에 임명하기 시작합니다.



페르디난트는 북이탈리아까지 진출하며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와 갈등에 불을 지폈으며


독단적인 결정과 배후의 세력인 발렌슈타인에게 의지하는 언행은 선거후들이 등을 돌리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프랑스 리슐리외 추기경



출처 : wikipedia



페르디난트의 세력을 견제하고 배후의 인물인 발렌슈타인을 제거하기 위해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이 움직입니다.


프랑스의 주교이자 실권자였던 리슐리외 추기경은 발렌슈타인이 페르디난트를 부추겨


프랑스나 스페인과 같은 강력한 전제적 황제가 된다면 프랑스에 큰 위협이 될것임을 우려했습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선거후의 배후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 발렌슈타인을 몰아내기 위한 여론을 조성합니다.



페르디난트는 발렌슈타인의 군대와 돈을 이용해 독일에 대한 의존도를 벗어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 했으며,


발렌슈타인은 페르디난트를 이용해 독일내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려고 했습니다.



구교인 카톨릭 국가였던 프랑스의 리슐리외는 신교를 지원하게 되고 구교의 분열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독일 제후들과 막시밀리안이 연합하여 페르디난트를 압박하게 되고,


페르디난트는 결국 막시밀리안을 선택하며 발렌슈타인을 해임하게 됩니다.



페르디난트의 구교 세력은 약화되기 시작했으며, 강력한 신교의 스웨덴군이 등장합니다.




구교와 신교의 다양한 문제가 얽혀 시작된 30년 전쟁은 점점 치열해집니다.



명장 틸리의 활약으로 보헤미아와 팔츠를 점령한 구교측 세력은


슈타트론 전투에서 신교 세력인 크리스티안을 궤멸시키며 승기를 잡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신교 세력 중 덴마크군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빠르게 변화하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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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참전



출처 : wikipedia



유럽 전역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당시 덴마크 역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덴마크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는 홀슈타인의 영주이기도 했습니다.


북해를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신교의 중심세력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는 


라인강 유역부터 북해로 이어지는 지역을 점령하면서 덴마크 왕국을 세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로마신성제국의 세력이 세력을 넓혀감에 따라 크리스티안 4세는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덴마크의 참전으로 신교의 잔여 세력이었던 할버슈타인의 크리스티안과 용병 만스펠트가 다시 연합하게 됩니다.





발렌슈타인의 등장



출처 : wikipedia



덴마크의 참전으로 위기감을 느낀 구교에 보헤미안의 몰락한 귀족 출신인 발렌슈타인이 구원군으로 등장합니다.


뛰어난 사업 수단을 지닌 발렌슈타인은 돈은 많았지만 명성이 없었으며,


자신의 이름을 유럽에 알리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군수 공장을 운영하며 자신의 군대를 키우던 발렌슈타인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에게


군대를 인정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데사우 다리 전투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 지역인 안할트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구교의 발렌슈타인군 2만과 신교의 만스펠트 1만 5천의 군대가 데사우 다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데사우에 먼저 도착한 발렌슈타인은 다리 건너편에 요새를 짓고 방어전에 돌입합니다.


병력도 적고 신교의 계속된 패배로 용병군의 입지가 낮아진 만스펠트는 요새 전면 돌파를 시도하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전투 경험이 없던 발렌슈타인을 무시한 만스펠트의 본진이 요새로 진격을 하고,


만스펠트는 데사우 다리 전투에서 4천명이 병사를 잃게 됩니다.


만스펠트는 전투에서 패전하며 유고슬라비아 지방으로 도주하게 됩니다.



루터 전투



출처 : wikipedia



발렌슈타인과 만스펠트의 데사우 다리 전투에서 구교의 발렌슈타인이 승리하며 만스펠트를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발렌슈타인은 만스펠트를 추격하며 같은 구교의 명장 틸리에게 약 4천의 병사를 지원해줍니다.


구교의 틸리와 신교의 덴마크 크리스티안 4세의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덴마크군은 작센군과 연합하여 틸리에 대항하지만 대포와 화약의 관리가 잘 되지 않은 덴마크군은 밀리게 됩니다.


틸리군은 반대로 대포와 화약의 관리가 잘 되어 있었으며 화약과 기병, 보병의 연합 전술로 신교 세력을 제압합니다.


작센군과 덴마크군은 큰 피해를 입으며 퇴각하게 됩니다.



데사우 다리 전투에 이어 루터 전투에서도 구교가 승리를 하게 되며, 


신교는 구교에 한 번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프라하 투척 사건으로 구교와 신교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과 변화로 인해 유럽은 혼란의 시기였으며,


특히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대립은 신교과 구교의 대립으로 대변되게 됩니다.


독일에서 발단이 되었지만 유럽 전체의 연합과 갈등으로 번져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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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5세



출처 : wikipedia



프라하 투척사건으로 3명의 구교 장관들이 창밖으로 내던짐을 당하게 되고 간신히 살아남아 탈출하게 됩니다.


프라하 투척사건 당시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에 없었으며,


신교의 반란으로 보헤미아 왕의 자리는 다시 공석이 됩니다.



라인 팔츠 지역의 신교측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 5세는 보헤미아를 노리고 있었는데,


보헤미아 신교 세력의 지원을 받아 공석이 된 보헤미아 왕으로 추대됩니다.


프리드리히 5세의 아내는 영국의 공주였는데 신교의 지지를 받고 있던 영국은, 


구교인 스페인과 로마신성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팔츠와 혼인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네덜란드의 바다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완전한 지배를 받게 된다면,


영국 역시 스페인의 위협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스페인이 네덜란드로 이동하는 중요 내륙 거점 지역인 팔츠 지역을 지원해야 했습니다.



보헤미아 역시 오랫동안 구교의 탄압을 받던 상황에서 신교인 팔츠와 영국에 의지하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했고,


이러한 이유가 신교 세력인 팔츠의 프리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 왕으로 추대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5세가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된 지 이틀 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사망하고,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보헤미아-팔츠 전쟁, 백산 전투



출처 : wikipedia



신성로마제국의 새로운 황제이자 이전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구교의 페르디난트 2세


팔츠의 왕이자 현재 보헤미아의 왕인 신교의 프리드리히 5세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보헤미아의 팔츠군과 제국군의 독일 작센 바이에른군의 보헤미아-팔츠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되며,


팔츠를 노리는 스페인과 스페인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려는 네덜란드의 전쟁 역시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1620년 프라하의 빌라 호라에서 구교와 신교의 전쟁인 백산 전투가 시작됩니다.


신교의 보헤미아 군대와 팔츠 군대, 만스펠트의 용병대, 영국 1개 연대의 1만 5천명의 병력과


구교의 작센 군대, 신성로마제국 군대, 동유럽 기사 용병대의 2만 5천명의 병력이 전투를 시작합니다.


구교는 창병과 총병이 섞인 테르시오 대형을 사용하여 신교를 압박했으며,


1622년 바덴의 프리드리히는 빔펜 전투에서 구교의 틸리와 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언덕 위에 진을 친 프리드리히는 마차를 이용해 방어벽을 쌓았지만,


강력한 구교의 테르시오 대형과 필드 캐논으로 신교를 격파합니다.


틸리는 프리드리히를 격파하고 신교 세력인 크리스티안군을 마인강에서 습격합니다.



신교 세력인 프리드리히와 크리스티안은 전쟁에서 패하고, 


용병 대장인 만스펠트를 따라 이동하다가 용병군의 계약이 만료되자 자연적으로 해산되었으며,


1622년 프리드리히의 신교 세력인 팔츠는 틸리에 의해 함락됩니다.



구교의 제국군은 보헤미아와 팔츠를 모두 점령하며 승리로 전쟁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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