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리처드의 등장으로 아랍 세계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아크레 공방전에서 살라딘을 격퇴한 리처드는 십자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게 됩니다.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십자군 최고의 명장 리처드는 1차 십자군 전쟁, 2차 십자군 전쟁과는 다른 


체계적인 군대와 최고의 리더를 갖춘 전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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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의 예루살렘 진격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합니다.


십자군은 보병, 기병, 수송병을 삼중 배치시키며 방어진을 구축하며 해안가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진격합니다.  


또한 해안으로 리처드의 함대가 수송 보급품을 싣고 군대와 함께 이동합니다.


그리고 살라딘은 이러한 리처드의 십자군을 조심스럽게 뒤따르며 결정적 장소에서 기습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아르수프 전투



출처 : wikipedia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던 십자군을 아르수프 숲에서 살라딘의 기병이 급습하며 전투가 시작됩니다.


궁기병으로 구성된 살라딘의 기병은 지속적으로 화살을 쏘며 십자군을 괴롭히지만 십자군의 전열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살라딘은 곤봉을 사용하는 클럽병에게 직접 공격을 명령합니다.


근접전이 벌어지지만 십자군의 군대는 전열을 유지하며 방어를 성공합니다.



리처드는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서는 아랍군의 공격이 십자군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1차 공격인 궁기병과 2차 공격인 클럽병에 휘둘리지 않고 전열을 유지해야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처드의 전략은 적중했으며 살라딘의 아랍군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이를 틈타 리처드는 세방향으로 군대를 나누어 이슬람군을 포위하게 되고 백병전이 시작됩니다.


조직적인 반격으로 십자군은 이슬람군을 격파합니다.



3차 십자군 결과



3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한채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살라딘에 의해 통합된 아랍 세계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예루살렘을 정복해도 끝까지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당시의 유럽의 상황은 소아시아에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기에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리처드는 살라딘과의 협정으로 예루살렘 통행권을 획득하며 영국으로 귀환합니다.


영국으로 돌아가던 중 리처드는 독일왕에게 잡혀 포로의 신세가 됩니다.


잉글랜드는 리처드의 몸값을 위해 잉글랜드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게 됩니다.



석방된 리처드는 왕권을 회복하고 필리프 2세와의 전쟁을 위해 프랑스로 진격합니다.


사자왕 리처드는 1199년 샬뤼성 전투에서 석궁에 맞아 전사합니다.



살라딘은 이집트에 이슬람 왕조인 아이유브 왕조를 건설합니다.


3차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리처드가 고국으로 돌아간지 5개월 후 살라딘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살라딘의 죽음으로 아이유브 왕조 또한 명맥을 오래 유지하기 못한 채 멸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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