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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멸전의 교본이라 불리는 칸나에 전투는 기원전 216년 시작됩니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에 침입한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트레비아 강 전투, 트라시메네호 전투에서 로마군을 크게 물리치며 남부로 진격합니다.


로마 원로원은 파울루스와 바로 두 사람을 집정관으로 임명하고,


약 8만의 보병과 7천의 기병을 이끌고 한니발과 싸우기 위해 칸나에 부근으로 진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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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에 전투의 시작



출처 : wikimedia



파울루스와 바로는 하루씩 교대로 로마군을 지휘합니다.


파울루스는 한니발과 평원에서 정면 전투를 치르면 안된다고 하며 신중하게 로마군을 지휘합니다.


하지만 바로는 전투 경험이 많이 없는데다가 성격도 파울루스처럼 신중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카르타고군은 로마군에 수적으로 매우 열세였습니다.


포섭한 갈리아족을 합쳐 보병 약 4만, 기병 약 8천 정도로 기병은 약간 우세했지만 보병은 절반이었습니다.


결전을 바라고 있던 바로의 성향을 파악한 한니발은 바로가 지휘를 맡은 날 공격을 시작합니다.





칸나에 전투 과정



출처 : wikimedia



로마군의 1진이 돌격하기 시작합니다.


로마군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 카르타고군은 초승달 형태로 늘어져 로마군을 포위하기 시작합니다.


중장보병을 중앙에 배치한 로마군은 중앙돌파가 성공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였으며,


사령관 바로는 대기하고 있던 로마군 2진을 1진에 합류시켜 중앙 돌파하라고 명령합니다.


1명이 서있을 공간에 3명의 병사가 모여있게 된 로마군은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카르타고군에게 포위됩니다.


카르타고군의 기병이 로마군보다 앞서 있던 점을 이용하여,


갈리아 기병이 로마군의 우익 기병을 격파하고, 누미디아 기병이 로마 동맹군의 좌익 기병을 격파함으로써,


로마의 기병은 와해되어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카르타고의 기병들은 로마군을 쫓지 않고 로마군의 후방을 공격하면서 로마군은 완전히 포위당하게 됩니다.



칸나에 전투로 파울루스는 전사하였으며 80여명의 원로원 의원들도 전사하게 됩니다.


6만 명에 이르는 로마군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1만 명은 포로로 잡힙니다. 


한니발은 완벽한 작전으로 꿈에 그리던 로마군 섬멸을 성공시키며 로마 정복에 한 발 다가서게 됩니다.



한니발의 절망



출처 : wikimedia



칸나에 전투를 완벽하게 끝낸 한니발은 로마를 고립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한니발의 원정 목표는 로마의 동맹국들을 이탈시켜 로마를 고립시키고 항복을 받는 것에 있었습니다.


칸나에 전투를 마친 카르타고의 몇몇 장군들은 당장 로마로 진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니발은 그들의 의견을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니발의 예상과는 다르게 로마의 동맹국들의 이탈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카르타고 본국에서 지원이 끊키게 됩니다.


결국 한니발은 16년간의 로마 전쟁에서 끝내 로마의 항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카르타고 본국이 로마 원정군에 의해 침략당하게 되고, 


한니발은 본국으로 돌아와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와 전투를 벌이게 되지만 패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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