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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2년 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카르타고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로마에 지불하게 됩니다.


카르타고가 지배하던 지중해의 섬들과 스페인을 로마에 양도하게 됩니다.


또한 로마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전쟁도 치르지 못하게 됩니다.


군사력을 상실한 카르타고의 영토는 끊임없이 영토 확장을 하고 있는 로마에 의해 위태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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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정치가 카토의 등장



기원전 150년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카토는, 


로마 원로원을 끊임없이 설득하며 카르타고를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카토는 카르타고의 전략적인 지리적 위치를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카르타고가 남아있는 한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는 지속적인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카르타고는 해상 무역이 발달했기 때문에 국력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카토는 카르타고의 완전한 멸망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1차 포에니 전쟁과,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카르타고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로마에 물어야 했지만,


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실제로 카르타고는 5년 만에 국력을 회복합니다.





3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



출처 : wikimedia



급격히 성장하는 카르타고에 위기를 느낀 로마는 카르타고의 이웃 나라인 누미디아를 지원하며


카르타고의 영토를 주기적으로 침공하게 하여 전쟁의 명분을 만들어 나갑니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는 로마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전쟁도 할 수 없었기에,


로마의 중재를 요청했지만 로마는 카르타고의 요청을 무시한 채 누미디아의 편에 섭니다.


기원전 151년부터 시작된 누미디아의 침입으로 경제적 손실이 컸던 카르타고는,


용병 6만을 조직하여 누미디아를 침공합니다.



3차 포에니 전쟁



출처 : flickr



명분이 생긴 로마는 곧바로 카르타고를 향해 진격합니다.


국력이 많이 약해진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협상을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지만 로마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로마군이 카르타고에 도착하고 로마군은 카르타고와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카르타고의 모든 무기를 로마에 넘기라고 합니다.


카르타고는 조건을 받아들여 약 10만여개의 무기를 로마군에게 넘겼지만,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주민 모두는 15km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라는 조건을 다시 요구합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카르타고는 성안에서 로마와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기원전 149년 3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됩니다.

 

무기를 모두 빼앗긴 카르타고 군을 상대하는 로마군은 전쟁이 일찍 끝나리라 예상했지만,


카르타고인들의 반격과 저항은 전쟁을 무려 3년 동안이나 지속되게 합니다.


결국 카르타고의 성벽은 무너지게 되고 3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며 카르타고는 사라지게 됩니다.


이후 로마는 카르타고 도시를 모두 파괴하고 불태웠으며, 땅을 갈아 소금을 뿌려 불모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50만의 인구는 5만으로 줄었으며, 그들마저도 곳곳으로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3차례에 걸친 카르타고와 로마의 포에니 전쟁은 비소로 막이 내리게 됩니다.


약 150년간 불모지였던 카르타고는 3세기경 다시 무역항으로 번영을 시작하게 됩니다.


무역가이자 개척가였던 한노, 카르타고의 위대한 장군 하밀카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라 평가 받는 한니발


아직도 후대에 기억되고 존경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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