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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두정치를 완성시킨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을 위해 출정합니다.



수 많은 빚을 청산하고 로마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로마 최대의 빚쟁이였던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이 끝난 후,


모든 빚을 탕감하였으며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됩니다.


또한 군사적 명성까지 쌓으면서 명실상부 로마의 1인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카이사르의 성장




갈리아



출처 : wikimedia



갈리아는 현재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서부, 라인강 서쪽의 독일을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입니다.


벨기에인인 벨가이, 갈리아인인 갈리, 켈트인인 켈타이, 아키텐인인 아퀴타니로 나뉩니다.


갈리아인은 100여개의 부족과 1200만명의 인구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갈리아는 농업과 목축이 고루 발달되어 있었으며 식량이 넉넉하고 상업 또한 발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독일, 라인강 동쪽의 게르만족과 충돌이 잦았으며 로마인들은 갈리아인들을 미개하고 원시적이라 생각했습니다.





갈리아 전쟁 시작



현재의 스위스인이자 스위스 원주민이었던 헬베티족은 게르만족의 침략을 피해 남하하고 있었습니다.


약 30만명 정도의 헬베티족은 남하하던 중 로마 속주를 침입하게 됩니다.


침입을 당한 하이두이족은 로마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카이사르는 이를 받아들여 오늘날 손강이라고 불리는


아라르강에서 헬베티족을 저지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헬베티족을 저지했지만, 카이사르의 로마군은 게르만족과 만나게 됩니다.  


라인강 근처에서 벌어진 로마군과 게르만족의 전투에서 로마군은 12만명의 게르만족을 물리치며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갈리아 전쟁



갈리아 전쟁 2년차, 기원전 57년, 벨기에인인 벨가이족의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로마군과 갈리아 기병 총 5만을 이끌고 카이사르는 알프스를 넘게 됩니다.


수에시오네스의 족장인 갈바를 중심으로 벨가이 동맹 29만명이 운집했으며, 로마를 선제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로마군은 누미디아 기병, 크레타 궁수, 마요르카 투석병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여 승리합니다.



벨가이 동맹은 해체되어 도망가기 바빴으며, 벨가이 동맹을 격파한 카이사르는 북쪽으로 진군합니다.


벨로바키족, 암비니아족을 거쳐 갈리아 북동부 최강자로 알려진 네르비족을 향해 진격합니다.


네르비족을 몰살시킨 카이사르는 갈리아 북동부 일대를 평정합니다.


게르만족과의 일전을 치른 카이사르는 기원전 55년과 54년 브리타니아를 침공합니다.


브리타니아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인 카이사르는 다시 갈리아로 귀환하게 됩니다.



갈리아 전쟁의 끝



출처 : wikimedia



갈리아 원정 7년차, 기원전 52년, 갈리아 민족들이 처음으로 단결을 하여 로마군에 반기를 들게 됩니다.


아르베르니족의 족장 베르켄게토릭스가 중부 갈리아의 대부분의 부족을 설득하고, 연합군을 만들게 됩니다.


아르베르니족은 현재의 프랑스 남동부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습니다.     



부족과의 단합 실패를 갈리아 부족의 약점으로 파악했던 베르켄게토릭스는 부족의 단합과 궐기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기병보다 느린 보병 중심의 전략과 적은 군사 규모를 로마군의 약점으로 파악합니다.


또한 보급에 문제가 있었던 로마군의 식량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로마군에 군량을 대는 갈리아 부족을 배신시킬 작전을 세우게 됩니다.



위기에 처한 카이사르는 청야 전술을 사용하던 갈리아 부족 도시 중 하나인 아바리쿰을 점령하면서 식량난을 해결합니다.


현재의 프랑스 디종 부근 구릉지대에 지어진 성채도시 알레시아에서 마지막 전투를 맞은,


카이사르와 베르켄게토릭스의 전투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하게 되며 갈리아 원정은 끝이나게 됩니다.



갈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는 돌이킬수 없는 강, 루비콘 강을 건너며 로마 내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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