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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유언에 따라 옥타비아누스는 후계자가 됩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가 암살 당할 때 옥타비아누스는 18세였으며


일리리아의 아폴로니아에서 군사 훈련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44년 5월 6일, 로마에 도착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집정관이자 카이사르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안토니우스를 만나게 됩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유언에 따른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카이사르 군단의 옥타비아누스 지지에 동맹을 선택하게 됩니다.


▶카이사르 유언장 확인하기





제 2차 삼두 정치



출처 : short history website



기원전 43년 10월,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는 제 2차 삼두 정치를 결성합니다.


사실상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이두 정치입니다.


3명의 집정관은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300명의 원로원 의원과 2,000명의 기사 계급 출신을


범법자로 규정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카이사르 암살파의 주요 인물인 브루투스 역시 마케도니아 속주 총독 자격으로 도망치듯 로마를 떠나


그리스에서 암살 공모자 카시우스와 함께 군사를 모집하게 됩니다.


로마 서방 세력인 삼두정치파와 로마 동방 세력인 암살파 / 공화파의 내전이 시작됩니다.


▶1차 삼두정치 확인하기



로마 내전, 필리피 전투



출처 : wikimedia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삼두정치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암살파는 


각기 세력을 규합하고 군대를 정비하며 로마 내전을 준비합니다.


삼두정치파는 22개 군단, 보병 약 10만명, 기병 약 1만기를


암살파 / 공화파는 19개 군단, 보병 약 7만명, 기병 약 2만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피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사이의 트라키아 지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군사 도로 에그나티아 가도에 위치하고 있어 요충지였으며,


도로 양쪽에 자리한 두 개의 언덕과 숲과 늪지로 이루어진 지리적 이점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암살파가 필리피를 전투 지역으로 선정한 이유는 보급에 유리했고 장기전으로 가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양측은 모두 로마군이었기 때문에 전술, 지휘 등이 표준화 되어있어 전력은 막상막하였습니다.


1차 필리피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 군대를 급습해 승기를 잡은 브루투스는 안토니우스의 후방 부대까지 습격합니다.


브루투스의 활약으로 1차 필리피 전투는 암살파가 승리했지만 암살파의 장군 카시우스는 돌연 자살을 합니다.


장군 카시우스의 자살로 사기가 떨어진 암살파는 2차 전투에서 삼두 정치파에 패하게 되고 브루투스 역시 자살을 택합니다.



필리피 전투로 암살파 / 공화파를 물리친 삼두 정치파는 집정관들 사이의 새로운 영토 협정을 맺게 됩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본격적인 로마 패권 다툼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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