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의 성지 순례가 로마 사회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구약 성서의 아브라함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공동 조상으로,


셀주크 튀르크 등장 이전의 시기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세기에 셀주크 튀르크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되면서 성지 순례를 전면 차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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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튀르크의 기원



출처 : wikipedia



이슬람 사회는 고대부터 병농 일치제로 전문 군인을 적극적으로 양성하던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슬람 사회는 노예를 군인 엘리트 층으로 양성하기 시작합니다.


이들 군인 계급을 맘루크 Mamluk 로 불렀으며, 투르크 족을 강제로 이슬람교로 개종을 시켜 맘루크를 구성합니다.



투르크족은 중앙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유목 민족으로,


흉노 제국 시대와 몽골 제국 시대, 돌궐 제국 시대까지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던 민족입니다. 


투르크족으로 구성된 맘루크는 점차 세력이 확장되었고 셀주크 투르크의 정권을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십자군 전쟁의 원인



출처 : wikipedia



투르크족의 영향력은 소아시아까지 미치게 되며 만지케르트 전투를 통해, 


비잔티움의 세력을 소아시아에서 밀어내게 됩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셀주크 투르크와의 전쟁을 준비하며 용병 자원자를 모집할 계획이었으나,


교황에 도움을 요청하자 교황의 이름으로 된 군대가 창설되며 예루살렘 성지 탈환 전쟁으로 전쟁의 성격이 변하게 됩니다.



또한 당시의 유럽의 상황 또한 십자군 전쟁을 가속화 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일종의 봉건적 성격을 지니던 영주들이 자신의 세력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교황은 세속적으로 이탈리아의 30% 정도를 직접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유럽에서 자신의 힘을 강화하고 세력을 확장시키려 했으며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교황에게 예루살렘 성지 탈환은 좋은 명분이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군대를 조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영주들은 당시 유럽내에서의 잦은 전쟁과 세력 다툼으로 인해 채무가 많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 탈환은 무역의 중심지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채무를 탕감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민중 십자군



하나님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민중들을 선동한 은자 피에르는 민중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이동합니다.


본격적인 십자군 전쟁에 앞서 민중 십자군이 결성됩니다.



하지만 정식 군대가 아니었으며 규율이 잡히지 않았던 민중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면서 약탈을 일삼았으며,


민중 십자군이 헝가리를 약탈하자 헝가리군과 동로마군이 출동하여 민중 십자군을 살육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소아시아에 도착한 민중 십자군은 결국 셀주크 투르크 군대에게 몰살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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