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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은 세계 역사를 바꾼 몽골 제국의 건국자입니다.



1206년 테무친이 칭기즈칸으로 추대 되면서 몽골 대제국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368년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면서 몽골 세력은 장성 이북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14세기 중후반 몽골 제국은 붕괴되면서 쇠퇴하게 됩니다.


▶ 칭기즈칸 등장과 12세기의 몽골 상황 확인하기

▶ 몽골 화폐와 환율 알아보기



칭기즈칸, 테무친의 어린 시절



출처 : wikimedia



칭기즈칸의 어린 시절 이름은 보르지긴 테무친입니다.


테무친은 강철, 대장장라는 뜻으로 몽골 보르지긴 씨족 부족장 예수게이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예수게이가 타타르 부족과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족장의 이름을 따서 테무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테무친은 어린 시절 용기라트 부족의 보르테와 약혼을 올리게 됩니다.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오랜 시절 동안 불화 관계에 있던 타타르족에 의해 독살을 당하게 되고,


어린 테무친에게 부족을 이끌 힘이 없다고 판단한 부족민들은 하나 둘씩 테무친을 떠나게 됩니다.  



테무친은 타이치우드족의 습격에 포로가 되면서 노예가 되어 어린 시절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테무친은 갖은 고생 끝에 포로에서 탈출하지만 추격대에 쫓기게 됩니다.


하지만 추격 대원 중 한 명인 치라운이 테무친을 못 본 척 눈감아 주어 살아나게 되고 테무친은 치라운을 따라가게 됩니다.  


치라운은 자신을 따라온 테무친을 도와주게 되고 후에 칭기즈칸의 수하가 됩니다.






테무친의 성장과 테무친의 참모들



테무친은 풀뿌리와 들쥐로 목숨을 연명하며 고난의 시기를 보냅니다.


점차 몽골 고원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며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며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테무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메르키트족은 테무친의 아내 보르테를 납치하지만,


테무친은 아버지인 예수게이와 의형제를 맺었던 케레이트족의 토그릴 완 칸에게 사정을 말하여 보르테를 찾아옵니다.


테무친은 결혼 예물인 모피를 토그릴 완 칸에게 선물했으며, 


토그릴 완 칸은 흩어져 있던 테무친의 부족민들을 모아주고 2만의 병력을 제공해 줍니다.



테무친의 사람들

 이름

 관계

 내용

 데이 세첸

 장인

 딸인 보르테와 테무친의 정혼 약속을 지키고 후원자의 역할을 함

 토그릴 완 칸

 예수게이의 의형제

 2만의 병력을 제공하며 흩어진 부족민들을 모아줌

 자무카

 어릴적 의형제

 테무친의 라이벌

 제베

 친위부대 누케르

 칭기즈칸을 암살하려던 적장에서 칭기즈칸의 장군으로 등용

 수부타이

 친위부대 누케르

 지략가, 전술형 장군



굽타산의 깃발 전투



출처 : wikimedia



테무친의 세력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자 케레이트족의 완 칸의 아들들이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결국 케레이트족과 자무카가 테무친을 배신하게 되며 칭기즈칸을 공격하게 됩니다.



일생의 최대 위기를 맞은 칭기즈칸은 한밤중에 대탈출을 시도하고 산악 지대에서 따라잡혀 전투로 이어지게 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칭기즈칸은 망구트족의 전사에게 굽타산 위에 올라 칭기즈칸의 깃발을 꽂으라 명령합니다.


깃발은 칭기즈칸 부대의 사기를 끌어 올렸으며 결사항전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칭기즈칸 부대의 가능성과 서로간의 신뢰가 쌓이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굽타산 전투는 강력한 몽골군 탄생의 밑거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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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중엽, 몽골족이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바이킹이 등장하는 시기와 비슷합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나아가 동유럽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정복한 몽골족, 


그리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몽골족을 통일한 칭기즈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바이킹 확인하기

▶ 바이킹 시대와 전투 확인하기





몽골족



출처 : wikipedia



몽골족은 흑룡강 (아무르강, 헤이룽강) 중상류 유역에서 목축과 수렵을 하던 민족입니다.


11세기에서 12세기 전후 몽골 고원으로 유입되었으며,


몽골의 어원은 몽고르어로 영원한 불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몽골족은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의 후예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몽골 비사에는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부부가 낳은 아들이 몽골족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의 몽골족은 몽골인을 지칭하며 몽골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몽골러시아, 중국 자치구인 내몽골 자치구에 거주하는 몽골인도 약 200만명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동아시아 북부를 점령했던 흉노 튀르크족의 후예라고 추정되는데,


동아시아를 점령한 튀르크족이 오늘날의 몽골 영토로 이동하면서 몽골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 흉노 전쟁 확인하기

▶ 몽골 화폐와 환율 확인하기

▶ 러시아 화폐와 환율 확인하기



12세기의 몽골 상황





중국은 12세기 당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성장하면서 남송이 양쯔강 이남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같은 유목민이지만 여진족은 몽골족을 핍박하며 학살을 자행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릅니다.



몽골 내부에서는 부족간의 약탈과 세력 싸움이 빈번히 일어났으며, 특히 척박한 겨울에는 약탈이 더 잦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부족간의 연맹이 매우 중요했으며 서로 얽힌 이해 관계에 따라 보복전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유목 민족은 더 강한 부족과의 연맹이 필수였으며 이른바 전형적인 육강식의 세계였습니다.


연합과의 배신도 자주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부족간의 단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금나라는 이러한 몽골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잘 이용하여 단합을 막고 분열을 조장하는 계략을 펼칩니다.



12세기 몽골족은 케레이트 부족, 메르키트 부족, 타타르 부족, 나이만 부족 등과 함께 몽골 고원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약 50여개의 크고 작은 부족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의 등장





칭기즈칸의 등장은 몽골과 중국 그리고 세계 역사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혼란했던 몽골족을 통합하고 정복 전쟁을 이어나가기까지 칭기즈칸의 업적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칭기즈칸의 리더쉽과 인재 등용, 개방적인 정책 등은 현재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정복 군주가 되기까지의 일대기는 현대인에게 큰 귀감을 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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