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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코르테스는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 문명을 발견하고 정복합니다.



신세계에서 모험과 부를 찾으려 했던 유럽에 아즈텍 문명 정복의 소식이 퍼지게 되고,


수 많은 탐험가들은 남아메리카의 탐험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수 차례의 탐험 끝에 1532년 잉카 북쪽의 한 도시에 스페인 탐험가들이 상륙하게 됩니다.


▶ 아즈텍 문명, 멕시코 환율과 화폐 알아보기



잉카인과 유럽인의 만남



바다에 떠 있는 산에서 내려온 흰 피부의 사람들을 본 잉카인들은 그들을 이라 생각했습니다.


잉카인들은 처음에 서양인들을 흰 피부의 뿔 없는 사슴을 타고 천둥 소리가 나는 막대기를 들었다고 묘사했으며, 


뿔 없는 사슴은 말을, 천둥 소리가 나는 막대기는 총이었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없었던 잉카인들은 갑작스럽게 밀려들어오는 서양인들에 의해 전염병에 노출되고


특히 천연두는 잉카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천연두는 잉카 황제까지 사망에 이르게 하며 다음 황제의 자리를 이을 피의 전투가 이어집니다.





아타우알파 황제



출처 : wikipedia



형제끼리의 피의 전투에서 아타우알파가 승리하며 잉카 제국의 황제에 오르게 됩니다.


아타우알파 황제는 전쟁에서의 승리 후 잉카 제국의 수도로 입성하던 중 스페인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들은 몇 년 전 잉카 제국을 발견했고, 자신들을 신이라 여기며 금 세공품을 바치던 잉카를 정식으로 정복하기 위해,


피사로 일행이 제대로 된 원정대를 꾸려 돌아온 스페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타우알파 황제와 스페인의 피사로 일행은 정식 회담을 결정하고 회담 장소에서 만났지만,


스페인 병사가 말을 타고 아타우알파 황제에게 돌진하는 액션을 보이자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돌칼과 돌도끼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던 잉카의 병사들은,


철갑옷과 철칼로 중무장된 스페인 병사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총과 대포를 처음 접한 잉카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와중 밟혀죽는 일도 발생하게 됩니다.


200명 정도의 스페인 일행은 4,000명의 잉카 병사들을 죽이는 동안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아타우알파 황제의 병력이 약 10만 정도였다고 하는데, 잔인한 살육전이 지속되며 아타우알파가 생포되서야 전쟁이 끝납니다.



정복 당한 잉카 제국



출처 : wikipedia



잉카 제국은 너무나도 손 쉽게 스페인 일행에게 정복당하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양 측이 사용하던 무기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잉카 제국은 흑요석을 이용한 돌칼과 돌창이 주요한 무기였으며,


스페인 일행은 철갑옷과 철칼로 중무장하였고 화승총과 석궁, 대포, 말을 사용했습니다. 



전투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는데 칼로 가볍게 손발을 공격하여 전투 불능을 만들던 스페인 일행과는 달리


잉카 제국은 사람을 때려 제압하는 방식으로 힘이 과도하게 많이 들고 쉽게 지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잉카는 스페인 일행에 비해 압도적인 병력을 보유했지만 결과적으로 약 200명의 스페인 일행에게 제압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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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은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남아메리카에 형성된 고대 문명입니다.



오늘날의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가 잉카 제국에 속합니다.


안데스 고산 지대에서 발원한 잉카 문명은 15세기에 번성했으며,


볼리비아에서 온 유랑 부족이 그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잉카 제국



출처 : wikipedia



잉카의 첫 번째 황제는 파차쿠티로 끊임없는 정복 전쟁을 통해 제국은 성장하게 됩니다.


잉카의 대표적인 문명인 마추픽추는 놀라운 잉카의 건축술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잉카의 문명은 놀랍도록 언발란스한 문명으로,


외과 수술과 건축술은 당대 최고의 기술이라 할 만 하지만 농경은 신석기 시대에 머무르는 수준을 보여줍니다.



농경의 미흡한 발달로는 잉카인들의 주식인 옥수수를 원인으로 드는 견해도 있는데,


옥수수는 3모작이 가능하며 먹고 버린 옥수수가 자연적으로 씨를 뿌려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페루 환율, 화폐 확인하기

▶ 볼리비아 환율, 화폐 확인하기

▶ 옥수수의 효능 확인하기



 


잉카 인신공양





잉카 제국의 특이한 문화는 사람을 제물로 바친 인신공양입니다.


인신공양은 특히 남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에서 많이 발견이 됩니다.


잉카, 마야, 아즈텍 문명은 모두 인신공양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문명이었습니다.



고산 부족 중 하나였던 잉카는 세력을 확장하면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특이했던 잉카의 종교관 때문이었는데 창조주이자 태양신인 쿠쿨칸을 섬기고 있었으며


쿠쿨칸이 인간의 신선한 피를 제물로 바치길 원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단의 꼭대기에서 의식이 진행되어 피가 계단의 가장 아래까지 내려오면,


그 피를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에 바르며 신의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에 수 천명에서 수 만명이 희생되는 잔인하고 끔찍한 의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필히 전염병의 위험에 사람들을 노출시켰는데,


시체 처리 기술이 미흡하고 화장을 하지 않던 과거 잉카 문명에서 전염병의 창궐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염병이 돌면 하늘이 노해서 전염병이 돈다고 하여 다시 수 많은 사람들이 인신공양에 바쳐져야 했습니다.


악순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스페인과 신대륙 항해



출처 : wikipedia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내쫓고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한 레콩키스타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슬람을 몰아낸 스페인은 급속도로 강성해지게 되고 유럽 최강의 나라로 등극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발달,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영향과 황금으로 가득한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신대륙 항해를 시작합니다.


군인들과 농민들은 자본을 출자하여 신대륙 탐험대에 투자하기 시작했으며,


신대륙에서 발견한 금이나 은 등의 재화와 자원은 투자자에게 투자금만큼 배당되게 됩니다.


오늘날 경제 체제의 토대인 주식 시장, 보험 회사 등이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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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지중해를 향한 야욕은 수 많은 전쟁을 일으킵니다.



로도스 공방전으로 유럽의 기사단을 물리친 오스만 제국은,


이 후 기사단이 정착한 몰타를 공격하지만 몰타를 점령하지 못한 채 후퇴하게 됩니다.


베네치아의 키프로스섬을 반환하라는 오스만의 요구에 유럽의 국가들은 연합군을 창설하게 되고,


오스만과 유럽 연합 사이의 지중해 패권을 둔 16세기 최대의 해전 레판토 해전이 벌어집니다.


▶ 로도스 공방전 확인하기

▶ 몰타 공방전 확인하기

▶ 오스만 제국 확인하기

▶ 악티움 해전 확인하기



레판토 해적의 시작, 북쪽 해전



출처 : wikipedia



1571년 오스만과 유럽 연합이 과거 악티움 해전이 벌어졌던 레판토 서쪽 해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첫 해전은 연안 가까이에 주둔한 북쪽의 함대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베네치아의 바르바리고와 오스만의 마호메트 시로코가 전투를 시작합니다.


베네치아 함대가 오스만 함대를 둘러싸려고 하자 오스만 함대도 베네치아 함대를 감싸려고 이동하였으나


오스만 함대가 연안쪽으로 날개를 펼치면서 육지와 베네치아 함대 사이에 압착 당하게 됩니다.


이어 백병전이 시작되었고 베네치아 함대의 지휘관 바르바리고가 얼굴에 화살을 맞고 전투 불능의 상황이 됩니다.


베네치아의 차석 지휘관의 활약으로 베네치아군은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오스만 함대의 지휘관 시로코 역시 부상을 당하게 되고 차석 지휘관이 부재했던 오스만군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백병전에서 밀린 오스만군은 육지로 퇴각하게 되지만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레판토 해전의 중앙 전투



출처 : wikipedia



교황과 베네치아 연합군의 지휘관 돈 후안과 오스만의 알리파샤의 중앙 전투가 시작됩니다.


양 군의 함선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뒤따르던 함선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양 측의 사령관이 모두 출동하는 치열한 백병전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오스만군이 밀어부쳐 돈 후안의 함선까지 올라타 공격을 하지만 화승총에 밀려 후퇴하게 되고


기세가 오른 연합군이 오스만의 함선에 올라타 오스만의 총지휘관 알리파샤를 사살하며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알리파샤가 전사한 후 사기가 떨어진 오스만군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레판토 해전의 남쪽 전투



출처 : wikipedia



레판토 남쪽은 제노바의 안드레아 도리아와 오스만의 울리치 알리가 맞붙게 됩니다.


북쪽과 중앙 전투와는 다르게 남쪽은 유럽 연합군이 오스만군에게 밀리고 있었습니다.


유럽 연합군의 16척의 배가 오스만에 포위되어 백병전이 시작되었고 수적으로도 열세인 상황이었습니다.



유럽 연합군의 배에 오스만군이 진입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 한 척의 배의 선장이 자신의 배의 화약고를 터트리며 자폭을 하게 됩니다.


북쪽과 중앙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것을 확인한 지원군 스페인 함대는 남쪽을 지원하게 되고,


오스만군은 전투에서 패한 채 후퇴하게 됩니다.



레판토 해전 결과



오스만군은 갤리선 118척이 침몰되고 117척이 연합군에 나포되면서 오스만의 해군이 와해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레판토 해전의 패배로 팽창을 멈추게 됩니다.


유럽 사회에서는 더 이상 오스만 제국이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으며,


개방적 정책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무역으로 대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나라로써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레판토 해전이 끝난 후 유럽 연합군은 다시 와해되었으며,


베네치아는 적이면서 파트너였던 오스만 제국과 강화 협정을 맺게 됩니다.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스페인은 신항로를 개척하며 세계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유럽의 무역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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