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음력 4월 13일 일본군 선발대가 부산을 공격합니다.
약 1만 8,000여명의 일본군은 순식간에 부산을 함락시킨 후 한양으로 향합니다.
일본군의 행군 속도는 1일 평균 약 20km로 진격의 속도가 매우 빨랐습니다.
조선의 전략, 전술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일본군은,
조선군의 방어진이 갖추어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기습하여 한양으로 진격하여 왕을 잡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지상전과 선조 몽진
출처 : wikipedia
1952년 음력 4월 13일 |
부산 진성 함락 |
1952년 음력 4월 15일 | 동래성 함락 / 선조, 신립 장군을 삼도 순변사로 임명 |
1952년 음력 4월 18일 | 고니시 군대 양산 입성 |
1952년 음력 4월 19일 | 일본군 김해 죽도 상륙 |
1952년 음력 4월 24일 | 상주 함락과 경상도 일본군에 의해 점령 |
1952년 음력 4월 28일 | 충주 탄금대에서 일본군에게 대패 / 신립 전사 |
1952년 음력 4월 30일 | 선조 몽진 |
1952년 음력 5월 2일 | 일본군 한양 점령 |
1952년 음력 5월 17일 | 일본군 임진강 전투 승리 / 일본군 한반도 북부로 진격 |
1952년 음력 6월 13일 | 평양 함락 |
1952년 음력 6월 22일 | 의주 행재소에서 명나라 망명 계획 |
1952년 음력 6월 27일 | 명나라의 망명 허가 /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 |
1952년 음력 6월 30일 | 명나라 군대 조선 파병 |
1953년 음력 1월 27일 | 조선군과 명군의 평양성 수복 |
1953년 음력 2월 12일 | 권율 장군 행주 대첩 승리 |
1953년 음력 8월 | 명나라가 일본에 휴전 협상 제안 - 이후 3년에 걸친 휴전과 협상 과정 진행 |
1953년 음력 10월 3일 | 선조 한양 도착 |
1953년 음력 10월 6일 - 10일 | 진주 대첩 승리 |
조선군의 반격
출처 : wikipedia
임진왜란 개전 2달 후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각지의 지방군과 의병들이 곳곳에 집결하기 시작했으며 일본군에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기 시작합니다.
또한 평양에서 왕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의병 봉기를 촉구했습니다.
전보다 일찍 찾아온 겨울로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으며 일본 본토에서 오던 보급선은 이순신 장군에 의해 차단됩니다.
일본군의 전황은 날로 불리해지고 있었으며 조선군은 일본군의 전략을 파악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명나라 참전
출처 : 위키백과
당시 만주의 만주족과 갈등이 있던 명나라는 조선이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일본군과 만주족이 협력하여 명을 공격할 것을 막기위해 임진왜란에 참전하게 됩니다.
일본군이 압록강을 넘기전에 조선 땅에서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해 1592년 6월 5천의 군사를 1차로 파병합니다.
그리고 이여송의 5만 대군을 2차로 조선에 파병합니다.
일본군을 만만히 봤던 명나라의 군대는 여러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결국 왜구 전문 부대인 척계광의 절강성 부대를 조선에 파병하게 됩니다.
가지를 치지 않은 대나무를 손잡이로 사용하는 병기인 낭선과 삼지창을 사용한 척계광은 원앙진을 사용했으며,
원앙진은 병사 12명이 한 몸이 되어 백병전에 능한 왜구와 싸우는 진법이었습니다.
1593년 1월 3일간의 조명연합군의 총공세로 고니시 부대는 항복을 선언하고 평양성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평양성을 수복하고 이후 행주대첩과 진주대첩에서 왜군에 대승을 거두며 왜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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