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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매머드 2세는 청동 대포로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합니다.



제국의 영광을 뒤로한 채 도시 국가로 전락한 비잔틴 제국이지만,


콘스탄티노플은 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황금뿔 만의 철쇠가 있었습니다.


매머드 2세는 수륙 양동 작전을 세우고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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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 공격, 육상전의 실패



출처 : wikipedia



천혜의 요새이자 천 년 동안 비잔틴 제국을 굳건히 지키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다다른 매머드 2세는


리쿠스 강 중앙 지점의 지형이 가장 낮은 곳에 대포와 병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합니다.


리쿠스 강에 최정예 부대 예니체리까지 배치되지만 섣부른 공격을 할 수 없어 견제 공격만 지속됩니다.



로마누스 군문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오스만 군은 성의 외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성으로 진격합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의 해자와 제한된 공격 지점으로 인해 오스만 군은 파상공세가 불가능했으며,


콘스탄티노플의 용병들의 활약에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제노바 용병을 비롯한 유럽의 용병들은 당시 강철검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군대는 유럽의 특수강의 위력에 칼이 손상되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약 4시간의 전투 후 비잔티움 제국의 전사자는 없었으며 오스만 제국은 200명의 전사자를 냅니다.


50일 동안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지 않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격, 해상전의 실패



출처 : wikipedia



황금뿔 만의 철쇠는 오스만 제국 해군의 공격 역시 허용하지 않습니다.


매머드 2세는 황금뿔 만의 철쇠를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페라 지구 뒤쪽으로 배를 들어 옮기는 전술을 실행합니다. 


도르래를 사용하여 페라 지구 안쪽으로 배를 들어 황금뿔 만 안으로 옮깁니다.


비록 오스만 제국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뚫지 못하지만 페라 지구와 콘스탄티노플을 단절시키게 됩니다.


고립된 콘스탄티노플은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고 서서히 패색이 짙어지게 됩니다.



비잔티움의 최후



오스만 제국의 끝없는 공격은 비잔틴 제국을 벼랑끝으로 몰아붙입니다.


식량이 고갈되고 병사들은 굶주렸으며 지원군이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로 오지 않게 됩니다.



매머드 2세는 최후의 전투를 준비합니다.


매머드 2세는 약탈 전문 부대인 아잡스를 선봉에 세웁니다.


1차 선봉 부대가 막히자 정규군 부대인 2차 부대를 곧바로 전투에 투입시킵니다.


하지만 2차 부대마저 수비에 막히게 되고 3차 부대인 예니체리마저 공격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 안으로 연결되는 작은 쪽문을 발견한 오스만 군대가 성안으로 진입하게 되고,


성안으로 들어간 오스만 군은 가장 높은 성벽에 오스만 깃발을 꽂게 됩니다.


오스만의 깃발을 본 비잔티움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천년의 제국 비잔티움이 떠오르는 신흥 강자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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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과 확장을 하던 비잔티움 제국은 쇠퇴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옛 로마의 영토 대부분을 수복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사망 후,


최대의 곡창 지대인 이집트와 동서 무역의 거점 시리아까지 이민족에 의해 빼앗기게 됩니다.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이 사라진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멸망하게 됩니다.


▶ 유스티니아누스 확인하기



이슬람 세력의 침입, 야르무크 전투



출처 : wikipedia



7세기, 세력 확장을 위해 이슬람 세력은 비잔티움 제국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636년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 사이인 야르무크 강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아랍 세력의 야르무크 전투가 일어납니다.


야르무크 전투에서 비잔틴 제국은 완패하며 이슬람 세력에게 아나톨리아 남부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슬람 세력은 당시 기독교 세력이 지배하던 레반트 지역으로의 진출을 갈망하고 있었으며,


야르무크 전투의 승리로 무슬림 정복 전쟁의 정복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됩니다.


이슬람 세력의 위대한 전술가이자 지휘관인 할리드 이븐 알왈리드가 등장한 전투이기도 합니다.



동서 무역의 요지인 시리아와 팔미라가 이슬람세력에 의해 점령당하고,


637년 예루살렘, 이집트, 페르시아까지 정복한 이슬람 세력은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하며 공성전을 펼칩니다.


아랍 세력의 침입으로 최대의 곡창 지대 이집트를 상실하였고,


슬라브족의 세력 확장으로 발칸 반도 남쪽의 지배권이 약하게 됩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무기



출처 : wikipedia



1. 그리스의 불



그리스의 불은 오늘날의 화염 방사기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불은 불이 붙은 자리에 물을 뿌리면 오히려 더 번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속에서도 사용 가능했던 그리스의 불의 제조법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633년 비잔티움을 위협하던 이슬람 세력은 674년 본격적인 침공을 감행합니다.


비잔티움은 그리스의 불을 사용하여 이슬람 군대를 전멸시키는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717년 1,800여척의 함대와 8만여 군대의 이슬람 세력이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지만


목재 함대를 사용하던 이슬람 군대의 배에 또 다시 그리스의 불이 사용되며 이슬람 군대가 전멸합니다.




2. 황금뿔 만의 철쇠



황금뿔 만은 콘스탄티노플에 접한 해협으로 콘스탄티노플의 항구와 군사적 방어선 역할을 합니다.


콘스탄티노플의 입구에 황금뿔 만의 철쇠를 설치하여 적군의 배를 저지하고 봉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슬람 함대를 황금뿔 만 (골든 혼 Golden Horn) 으로 유인하여,


황금뿔 만의 철쇠로 함대를 가두어 놓은 후 그리스의 불로 함대를 격파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리스의 불과 황금뿔 만의 철쇠는 비잔티움 제국을 천 년 동안 지켜줍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그리스의 불을 가르켜 하늘의 천사가 내려준 비방이라 했으며


유럽인들이 가장 탐냈던 비잔티움의 보물 중 하나가 그리스의 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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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초대 황제로 등극합니다.



로마의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수여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기부터 로마를 팍스 로마나 기간이라고 부르며,


기원전 27년부터 180년까지의 시대를 뜻합니다.


이전까지의 영토 확장 전쟁과 내전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기와는 달리,


팍스 로마나 시대는 약 200년간의 로마 평화 시기를 의미합니다.


▶ 카이사르 성장 학인하기

▶ 옥타비아누스 확인하기



팍스 로마나 시대 이후



출처 : flickr



팍스 로마나 시대 이후 황실의 근위대가 황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쥐게 됩니다.


약 50년 동안 20명이 넘는 황제가 교체되었으며 황제의 자리를 두고 입찰 경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었으며 로마 내부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외부의 이민족들이 로마를 침략하기 시작합니다.


동쪽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북쪽에서는 슬라브족과 게르만족이 로마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넓은 영토로 인해 이민족의 침략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으며 이것은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시작





로마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로마를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기로 결정합니다.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현재 터키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명하고,


비잔티움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게 됩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동로마입니다.


▶ 터키 환율, 화폐, 역사 확인하기



395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동로마와 서로마를 구분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동로마 제국 역시 로마 제국으로 불렸으며 주변의 나라들도 로마 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구분하는 것은 편의상이며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그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단기간에 유럽 전체 국가 중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서로마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로마 제국의 수도는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한 로마라는 인식으로 인해


서로마 제국으로의 이민족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습니다.


동로마 제국으로 침략하던 이민족들 역시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돈을 지불받고,


서로마로 진격해 서로마를 침략하게 됩니다.



군기마저 약해진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채용하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큰 이유가 됩니다.


로마군의 절반 가량이 용병군이었으며 점점 치솟는 용병들의 몸값은 로마 재정 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476년 서로마는 고트족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은 사라지고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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