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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포에니 전쟁의 패배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의 주도권을 상실합니다.



1차 포에니 전쟁의 패배로 로마에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고, 


전쟁에 참가한 다른 나라의 용병들의 급료도 지불해야 했습니다.


또한 코르시카와 사르데냐까지 로마에 양여하게 됩니다.


일설에는 카르타고페르시아만큼 돈이 많았다고 하는데, 


전쟁 배상금을 국고에서 줄 정도로 전쟁 배상금으로 인한 경제 악화는 없었다고 합니다.



하밀카르 바르카의 에스파냐 진출



출처 : wikipedia



육군 양성의 필요성을 느낀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는 기원전 237년 스페인 점령을 위해 출정합니다.


약 9년여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하밀카르는 원주민 부족들의 항복을 받아내고 스페인 점령을 성공합니다.


부유했던 카르타고는 전쟁 발발시 용병을 고용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용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하밀카르는 스페인을 정벌하고 최고의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합니다.


에브로 강의 남쪽 지역이 전부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기원전 228년 원주민의 반란을 진압하던 중 하밀카르는 전사하게 됩니다.


일설에 따르면 하밀카르에 위협을 느낀 로마가 자객을 보내 암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밀카르의 전사는 카르타고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카르타고 정복 전쟁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하밀카르의 아들 한니발의 등장입니다.





한니발



출처 : wikipedia



하밀카르는 한니발의 나이 9세 때 스페인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한니발이 에스파냐로 함께 가고 싶다고 하밀카르에게 이야기했고 하밀카르는 9살의 어린 아들 한니발을 


바알 신전으로 데리고가 평생 로마를 적으로 삼을 것을 서약 시킨뒤에야 허락했다고 합니다.


평생 로마를 적으로 삼을 것을 맹세한 한니발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로마에 대한 증오심을 배웁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을 담은 책입니다.


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주인공이 바로 로마의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던 한니발입니다.


비록 적이었지만 로마도 인정할 만큼 위대한 명장이었습니다.


위대한 장군으로 평가받는 또 다른 인물 나폴레옹 보다도 2,000년 앞서 알프스 산맥을 넘었으며,


알렉산드로스 / 알렉산더 대왕과 피로스를 존경하여 그들의 병법을 연구하고 공부한 고대 최고의 장군들 중 한명입니다.



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니발의 뛰어는 전술과 전략은 후대에도 전해집니다.


기원전 218년 여름, 28살의 젊은 장군 한니발은 약 10만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로마 본토를 정복하기 위해 출정합니다.


알프스를 넘었을 때는 기병 6천, 보병 2만, 코끼리 1마리로 병력이 크게 줄었지만,


갈리아족을 포섭하여 약 5만의 군사를 모은 한니발은 칸나에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로마를 압박합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로마 본국에서 로마를 압박하였지만,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의 북아프리카 본토 공격으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하면서 2차 포에니 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이후 소아시아로 망명하게 되고, 끝내 독을 마시고 자살하게 됩니다.



1차 포에니 전쟁 확인하기

▶카르타고 확인하기

페르시아 확인하기

▶알렉산더 대왕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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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경 로마의 세력은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건설한 지중해 무역 도시들을 탐내고 있었습니다.


완전 농업 국가였던 스파르타와는 달리 로마는 무역도 하는 농업 국가였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점차 팽창하던 로마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되고,


이러한 로마에게 당시 해상의 1인자였던 카르타고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또한 카르타고는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영토 확장과 제국의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해상의 1인자 카르타고와 육상의 1인자 로마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포에니 어원



포에니의 어원은 페니키아입니다.


오늘날 소아시아에서 성장한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로 이주하며 카르타고를 건설했고,


카르타고인들의 뿌리는 페니키아였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페니키아인을 부르던 포에니의 이름을 따서 포에니 전쟁으로 불리게 됩니다.





1차 포에니 전쟁의 이유



출처 : wikipedia



시칠리아는 카르타고의 무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은 상선의 항로상 중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무역의 중심 항로를 확보하려면 시칠리아 섬을 점령해야만 했습니다.


카르타고의 엄청난 부를 확인한 로마인들은 시칠리아 섬을 눈독들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칠리아 섬은 완전한 카르타고의 지배에 있지 않았으며 로마인과 카르타고인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점령해야하는 땅, 로마의 심장을 노리는 칼로 생각했습니다.


무역을 발전시키고 해상으로 나가려면 카르타고를 반드시 멸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은 내전에 휩싸여 있었으며, 라틴계와 그리스계인들에 의해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도시 국가인 메시나는 가장 세력이 강력했던 시라쿠스의 공격을 받고 있었으며,


메시나는 카르타고와 로마에 원군 요청을 하게 됩니다.



1차 포에니 전쟁



출처 : wikimedia



메시나는 거리가 먼 카르타고 보다는 확장중이었던 로마에게 구원 요청을 하게 되었고 로마는 구원병을 파견합니다.


메시나는 카르타고에게도 구원 요청을 하였지만, 카르타고에서 먼저 군대를 파견할 경우 시칠리아 섬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짐을 파악한 로마는 카르타고를 견제하기 위해 일찍 구원병을 파견합니다.


군대를 메시나로 파견한 로마는 메시나를 로마의 세력하에 두었고 시라쿠스까지 귀속시켜,


시칠리아 섬의 동부와 이탈리아 남부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칠리아 섬에서의 영향력이 줄게 된 카르타고는 대규모의 병력을 시칠리아에 파견하게 됩니다.


기원전 264년 1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입니다.



1차 포에니 전쟁, 하밀카르 바르카와 스키피오



출처 : flickr



17년 동안의 교착 상태카르타고의 명장 하밀카르 바르카가 등장하면서 끝이나게 됩니다.


하밀카르 바르카는 카르타고의 첫 번째 위대한 장군입니다. 한니발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막강한 전함인 카르타고의 5단 전함을 앞세워 시칠리아 본토를 휘젓고 다닙니다.


카르타고 5단 전함의 가장 큰 무기는 상대 전함을 파괴시키는 거대한 청동 충각이었습니다.


길이 36m, 폭 3m-5m, 탑승 인원 420명, 무게 100톤의 카르타고 5단 전함은 기동성 또한 매우 뛰어났습니다.


또한 전함을 만들어내는 속도도 매우 빨라 카르타고의 배가 침몰해도 곧바로 다른 전함이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로마는, 침몰한 카르타고의 전함을 노획하여 재조립하고,


그와 유사한 수십척의 전함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카르타고의 전함과 같지는 않았지만 로마 해군 전력 상승에 큰 기여를 하게됩니다.


기원전 241년 카르타고와 로마는 시칠리아 서부 연안의 에가디 제도에서 결전을 치루게 됩니다.


로마 해군 사령관 스키피오가 포로로 잡히지만, 그 뒤를 이어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두일리우스는,


까마귀라 불리는 코르부스 잔교를 탑재하여 전투에 나서게 됩니다.


포로로 잡힌 스키피오는 2차 포에니 전투에서 한니발을 물리치고 로마의 승리를 이끈 스키피오 장군의 아버지입니다.



카르타고 전함과 거리를 가까이 유지하여 코르부스 잔교를 배와 배 사이에 설치하고 백병전을 치룬 로마군의 승리,


카르타고군 3만여 명이 포로로 잡히고 하밀카르 바르카가 퇴각하게 되며 로마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이후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로마에 지불하게 되고 지중해의 섬을 뺴앗기는 등 패권에서 밀렸지만,


카르타고는 2차 포에니 전쟁을 준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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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권력과 야망으로 건설된 제국 카르타고는 600년간 지중해를 지배합니다.



카르타고인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상업술은 이후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고대 세계 최고의 전함과 항구 시설은 카르타고를 대표하는 기술의 집약체입니다.


카르타고의 전함은 속도가 매우 빠른것으로 유명했고,


카르타고의 전함은 주변 여러 나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제국 중 하나로 불리는 로마의 등장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둔 전쟁이 시작됩니다.



카르타고



출처 : wikimedia



학창 시절 우리는 카르타고에 대해 들어 본 경험이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카르타고는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튀지지 북쪽 해안 도시인 튀니스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 강력한 제국 카르타고는 최강의 해군력으로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카르타고의 기원은 티레라는 도시로 티레의 페니키아인들의 이주로 인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한 때 번영했던 도시 티레는 권력 투쟁으로 인해 도시가 피폐해지게 되면서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티레는 오늘날의 소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근교에 있었다고 합니다.



티레의 왕 무토의 공주였던 디도는 그의 남편이 오빠인 피그말리온에 의해 살해당하자,


페니키아인들을 이끌고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로 피신하게 됩니다.


원주민들에게 토지를 얻게 된 디도 공주는 비르사 언덕 근처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기원전 9세기, 디도가 새로 세운 카르타고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육지보다는 바다로 눈을 돌린 카르타고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개척자였습니다.


무역로를 개척해 빠르게 성장한 카르타고는 급속하게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후 20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룬 카르타고는 이비사, 사르디니아, 누미디아 등의 식민지를 개척하게 됩니다.


기원전 7세기, 카르타고는 무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합니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의 상업, 문화의 중심지가 됩니다.





카르타고의 기술



출처 : wikimedia



카르타고 이전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신을 위한 건축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카르타고는 주택의 건설에 집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를 찾아 카르타고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도시 건축가들은 이들이 살 집을 건축하기 위해 고심했으며 도시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우 획기적인 건축물의 형태를 고안해냅니다.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건축물이 필요했고, 오늘날의 아파트 형태의 건축물을 짓기 시작합니다.


아파트 건축의 재료는 튀니스만의 채석장에서 석회암을 공급받아 사용합니다.



대도시로 성장한 카르타고는 원활한 용수 공급에 대해서도 뛰어난 기술을 발휘합니다.


점토와 재, 계란 껍질을 사용하여 만든 수조는 완벽한 방수 시설을 갖춘 최고의 용수 시설물이 됩니다.


수조에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서 각 가정으로 물이 공급됩니다.


또한 욕실에는 욕조와 세면대, 샤워 시설을 갖추게 됩니다.


수도와 하수 시설까지 갖춘 카르타고는 대규모 도시 국가로 부상하게 됩니다.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업 또한 카르타고를 부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기원전 6세기, 카르타고의 탐험가 한노는 카르타고의 식민지 개척과 무역로 확장을 위해 항해를 시작합니다.


기원전 520년, 3,000명의 사공이 60척의 배를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항해를 시작합니다.


개척한 식민지에 카르타고인을 이주시키고 식민지를 장악하여 그 곳의 자원을 확보하게 됩니다.


카르타고는 해상을 장악해 부와 권력을 축적했고, 사르디니아와 발레아레스 제도를 영향력 아래 두게 됩니다.




카르타고 기술력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항구 시설은 카르타고의 심장이라 불렸습니다.


카르타고의 항구는 카르타고의 해군과 해상 무역의 중심이었습니다.


항구의 입구는 폭이 21m로 강철 사슬을 이용해 폐쇄가 가능한 구조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이 모인다고 할 정도로 카르타고의 항구는 상인들과 상선으로 분주했습니다.


안쪽으로는 군함을 위해 설계된 둥근 모양의 정박지가 있었습니다.


총 220척의 군함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합니다.



200년간 지중해를 장악하던 카르타고는 지중해 건너의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지중해를 둔 패권 다툼이 시작됩니다.


강력한 라이벌은 로마 제국으로 총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육지의 최강자 로마와 해상의 최강자 카르타고는 결국 맞붙을수 밖에 없는 운명에 휩싸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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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빨리 뱃속의 아기를 만날 생각에 기쁩니다.



임신 초기에는 태아가 너무 작아서 복부 초음파 검사로는 태아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초기에는 질식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는데, 봉 형태의 기구를 질 속에 넣어 검사하는 방법입니다.


5주가 지나면 배 위에 젤을 바른 후 초음파 진단 장치를 복부에 대고 문지르며 진단하는,


복식 초음파 검사를 합니다.



초음파 검사



출처 : wikimedia



초음파 진단 장치의 변환기에서 자궁 속으로 음파를 보내게 되면, 


음파가 태아에게 부딪쳐서 되돌아 오는 음파를 컴퓨터로 해석하여 모니터 화면을 통해 태아의 모습을 추정합니다.


초음파 검사는 산모와 태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자궁과 태아의 상태를 모니터를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산 예정일, 태낭의 위치, 태아의 심장 박동, 태아의 성장 발달, 손발의 기형, 언청이 등의 외형적 이상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초음파 검사는 외형적 이상만 발견할 수 있을 뿐, 다운증후군과 같은 염색체 이상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양수량을 측정하여 태아의 기형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으며 역아, 쌍둥이, 자궁 이상 등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임신 개월별 초음파 검사 내용




 임신 1개월

태낭이 형성되며, 태아의 모습은 꼬리가 달린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임신 상태가 정상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임신 2개월

뇌와 신경세포가 80% 정도 완성되며, 머리와 몸통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꼬리가 없어지고 손발과 심장이 형성되며, 장기의 분화도 시작됩니다. 

 임신 3개월

 초음파로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생겨 머리, 손, 발을 구분할 수 있고 성기도 완성됩니다.

 임신 4개월

 몸의 기관 형성이 끝나고 각 기관의 움직임이 활발해 집니다.


손톱과 발톱이 자라고 근육이 발달하여 팔다리가 두꺼워집니다.

 임신 5개월

 심장 박동 소리가 커지고 머리카락이 자랍니다.


망막이 발달해서 뱃속에서도 빛의 자극에 반응하게 됩니다.


골격과 근육이 발달해 태동을 느끼고 눈, 코, 입의 형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임신 6개월

 양수의 양이 서서히 늘어나고 태아가 자궁 안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머리카락 짙어지고 눈썹과 속눈썹도 자라기 시작합니다.

 임신 7개월

 뇌의 기능이 발달하고 청각도 발달해 소리에 반응합니다.


머리 둘레, 팔다리의 길이, 혈류의 세기를 확인하여 성장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파악합니다.

 임신 8개월

 신경이 활발해지고 근육이 발달하여 태아는 양수 속을 마음껏 움직입니다.


빛의 자극에 반응하고 호흡을 하기 시작합니다.

 임신 9개월

 몸 전체에 살이 붙으면서 통통해지기 시작합니다.


폐의 기능도 거의 완성됩니다.

 임신 10개월

 내장, 신경 계통이 완성됩니다.


장기가 제대로 형성되었는지 확인하고, 태반의 위치와 탯줄이 태아에 감겨있는지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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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평균 임신 기간은 280일 정도, 40주 정도입니다.



출산 예정일을 계산하는 방법은 병원 진료를 통해 계산할 수 있으며,


스스로 출산 예정일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출산 예정일을 기준으로 태아의 발육 상태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병원 진료를 통한 출산 예정일 계산법





1. 초음파 검사



임신 5주부터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와 태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둔장, 즉 태아의 머리끝부터 태아의 엉덩이까지 길이를 측정하여 수정된 날짜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생리 주기가 불규칙한 여성이나 마지막 생리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자가 계산법보다 정확하게 출산 예정일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신 12주가 지났을 경우 태아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초음파 판독 오차가 일주일 정도 날 수 있습니다.


임신 5주 이전에는 태낭이 초음파에 잡히지 않아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없으며,


임신 5주부터 초음파 검사가 가능합니다.



2. 자궁저 높이



자궁저 높이는 골반 앞쪽의 치골부터 자궁의 가장 높은 곳까지의 길이를 일컫습니다.


임신 20주부터 30주의 경우,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궁저의 높이가 임신 주수와 거의 일치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임신 25주라면 자궁저가 25cm로 태아의 발달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으로도 이용됩니다.


임신 9개월 이후부터 만삭일 때는 태아가 자궁 밑으로 내려와 자궁저의 높이가 낮아집니다.





출산 예정일 자가 계산법





1. 체온 확인



일반적인 여성의 경우 배란 전에는 체온이 36.1도에서 36.3도 입니다.


배란이 되면 36.4도에서 37도까지 기초 체온이 상승하게 됩니다.


배란 후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 다시 체온이 정상 체온으로 돌아오게 되고


배란 후 임신이 된다면 출산 때까지 기초 체온이 상승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약을 복용하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기초 체온 확인만으로는 정확히 산출하기 어렵습니다.



2. 마지막 생리일로 계산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면 임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수정이 된 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마지막 생리가 시작 된 날로부터 280일 후를 출산 예정일로 계산합니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계산을 할 때 생리 주기 또한 고려해야 할 사안입니다.



생리주기별 출산 예정일 계산

 28일

 25일 (28일-3일)

 35일 (28일 +7일)

 마지막 생리일 + 280일

 마지막 생리일 + 277일

 마지막 생리일 + 287일



3. 네겔식 계산법



네겔식 계산법은 마지막으로 생리한 달에서 3을 빼거나, 3을 뺄 수 없을 경우에는 9를 더하고


마지막 생리가 시작된 날짜에서 7을 더해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즉 4월에서 12월 사이에 마지막 생리가 시작되었다면 그 달에서 3을 빼고,


1월에서 3월 사이에 마지막 생리가 시작되었다면 9를 더하여 출산 예정달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7월 3일인 경우, 7월에서 3을 빼면 4월, 3일에서 7을 더하면 10일, 즉 4월 10일이 출산 예정일이 됩니다.


2월 19일인 경우 2월에서 9를 더하면 11월, 19일에서 7을 더하면 26일, 즉 11월 26일이 출산 예정일이 됩니다.



출산 예정일 계산법은 추측으로 계산한 날짜이기 때문에 100%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출산일은 예정보다 조금 빠르거나 늦을 수 있으며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출산 예정일을 기준으로 3주 전, 그리고 2주 후 까지는 정상 출산 범위입니다.


출산 예정일을 계산하는 이유는 태아의 발육 상태를 확인하고 임신부가 알맞는 임신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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