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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라이는 태국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785km, 치앙마이에서 155km 떨어져 있습니다.


도시의 인구는 약 20만 명 정도이며 태국, 라오스, 미얀마와 국경에 인접해 있습니다.


골든트라이앵글을 확인하러 오는 관광객으로 언제나 북적입니다.



치앙라이 소개



출처 : flickr / cloud shepherd



치앙라이의 역사는 12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262년 멩라이 왕에 의해 세워진 치앙라이는 멩라이 왕조의 수도였습니다.


멩라이 왕이 새로운 수도인 치앙마이에 도성을 건축하게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1281년 람푼으로 수도가 이전되면서 멩라이 전성기 시절의 치앙라이는 그 명성을 잃게 됩니다.


그 후 치앙라이는 버마에 의해 점령 당하며 1786년 태국의 라마왕 1세가 치앙라이를 태국에 합병시킵니다.


1933년 태국의 주로 승격되어 치앙라이 주의 치앙라이 시로 불리게 됩니다.


인구의 구성은 산악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카렌족, 아카족, 리수족 등이 속합니다.


1,000여 개의 소수 민족이 살아가는 치앙마이와 베트남 소수 민족의 하장, 사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치앙라이 관광





치앙라이는 골든 트라이앵글로 유명합니다.


또한 다양한 유적지와 사원 등 태국의 역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관광객이 몰립니다.


시암 문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이 많으며 치앙라이에서 시암의 문화가 태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긴 목을 가진 카렌족과 아카족은 치앙라이의 매력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산과 들판, 신비한 동굴과 폭포를 포함한 태국 북부의 풍경은


태국 남부 해안 도시와 섬인 푸켓, 코사무이, 파타야, 코창 등과 또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온천 또한 유명하며 미얀마와 라오스, 중국으로 통하는 관문입니다.  





치앙라이 날씨





치앙라이는 일 년 내내 따뜻하고 아늑합니다.


그러나 태국 북부는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다른 태국의 지역과 달리 크게 세 계절로 나뉩니다.


추운 계절과 더운 계절 그리고 우기로 나뉘는 치앙라이의 성수기는 추운 계절입니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추운 계절이며 성수기입니다.


밤에는 약간 쌀쌀하여 따뜻한 옷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비는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는 더운 계절입니다.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며 습도도 매우 높습니다.


정글에서는 산불이 자주 발생하며 이 시기는 방문하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장마로 우기입니다. 7월과 8월이 가장 비가 심하게 내립니다.



치앙라이 가는 방법



출처 : flickr / Paul Arps



버스


치앙라이는 방콕에서 1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버스는 여행사 투어 패키지로 많이 이용하며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치앙마이에서 치앙라이까지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비행기


방콕에서 치앙라이 국제 공항으로 이동하는 비행기가 있으며 1시간 반정도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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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의 북쪽에 위치한 칸차나부리의 매력은 끝이 없습니다.



자동차로 방콕에서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는 칸차나부리는,


콰이강의 다리에 맺힌 전쟁의 아픔을 확인하고 교훈을 얻기에 충분한 역사의 보고입니다.


또한 에라완 국립 공원의 에라완 폭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도 충분합니다.


칸차나부리의 또 다른 매력을 소개할까 합니다.



프라삿 무앙 싱 역사 공원



출처 : wikipedia



Prasat Muang Singh Historical Park로 불리는 프라삿 무앙 싱 역사 공원은


13세기 크메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고고학적 유적지입니다.


라테라이트 돌로 지어진 이 곳은 직사각형의 터를 기반으로 세워졌습니다.


중심지에는 옥수수 모양의 프랑이 세워져 있습니다.


프랑 Prang은 힌두교 기반의 불교 건축 형태로 높은 첨탑 외부에 조각상을 배치하는 양식입니다.


인도에서 시작한 프랑은 크메르 제국으로 옮겨갔다가 태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태국의 수코타이와 아유타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메르 영향을 받은 이 사원은 불교도들을 위한 예배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이 욕 국립 공원



출처 : wikipedia



Sai Yok 국립 공원은 죽음의 철도 77km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칸차나부리에서 시작되는 철도는 콰이 노이 강을 따라 운행되며 남톡에 도착하게 되며


이 곳이 사이 욕 노이 폭포가 위치한 곳입니다.


사이 욕 국립 공원, 사이 욕 야이 폭포, 라와 동굴, 다오와등 동굴, 카위 동굴 등 다양한 명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이거 템플



출처 : flickr / xiquihosilva



정식 명칭 Wat Pa Luang Ta Bua인 타이거 템플은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곳입니다.


인도차이나 호랑이 60마리 이상을 보호하고 있는 타이거 템플은 호랑이 보호 구역이기도 합니다.


비싼 입장료를 지불한다면 호랑이의 일상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돈을 더 지불한다면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호랑이들이 힘이 없고 무기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왓 탐 수아 사원





Wat Tham Sua 사원은 광대한 논을 배경으로 하며 매 클롱 담 언덕을 앞에 둔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57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아우라 돔 안에 있는 황금 불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 예배당은 팔각형의 바닥에 여러 층의 계단, 화려한 장식, 아치형 문으로 이 사원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왓 탐 카오 노이 사원





Wat Tham Khao Noi 사원은 왓 탐 수아 사원과 같은 언덕에 위치해 있습니다.


중국 스타일의 우뚝 솟은 탑이 있으며 1883년 중국 대수도원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같은 언덕에 지어졌지먄 왓 탐 수아 사원과 왓 탐 카오 노이 사원은 바로 연결되는 길이 없습니다.


언덕에 올라 두 개의 사원을 감상하고 드넓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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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차나부리는 콰이강의 다리를 떠올리게 되는 아픔의 지역입니다.



전쟁의 참혹함이 부른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는 칸차나부리는 전쟁의 아픔말고도


다양한 볼거리와 관광지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태국에서 세 번재로 큰 행정구역이며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칸차나부리,


칸차나부리의 아름다운 자연의 보고 에라완 폭포를 소개합니다.



에라완 폭포





에라완 폭포는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 중 하나입니다.


칸차나부리의 테나스림 언덕에 위치한 에라완은 일곱 계단을 거쳐 150m를 낙하하는 웅장한 폭포입니다.


에라완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에라완 폭포는 정글 속 2km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폭포 아래에는 신성한 경질 수목이 있으며 축복을 비는 성스러운 나무입니다.


일곱 개 계단의 전체 길이는 1,500미터 정도이며 각 계단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습니다.





첫 번째 계단의 이름은 Hlai Keun Lung 으로 주차장에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평평한 길로 이동을 하며 다른 계단에 비해 이동이 매우 용이합니다.


부드러운 석회암으로 형성된 연못이 있으며 많은 물고기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못에 다리를 담글 수 있으며 물고기들이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처음에는 조금 놀랄 수 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익숙해 지며 고기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출처 : wikimedia



두 번째 계단은 Wung Macha입니다.


서서히 경사가 가파라지기 시작하며 이 곳은 수영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천국입니다.


폭포의 아래에는 작은 동굴이 있어 경치가 매우 좋습니다.


이 곳 부터는 국립 공원의 관리를 받는 곳이기 때문에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계단은 Pha Nam Tok 으로 두 번째 계단에서 50m 정도 하이킹을 해야합니다.


물고기들로 가득한 큰 연못이 있으며 폭포의 20m 정도에 해당합니다.



네 번째 계단은 Oke Nank Phee Seah, 다섯 번째는 Bua Mai Long입니다.


암석층과 울창한 초목으로 둘러싸인 작은 폭포와 연못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계단 이후로는 길이 매우 가파르고 거칠어집니다.


그 위로 더 올라가라면 사다리와 밧줄을 이용해야 합니다.



출처 : wikimedia



여섯 번째 계단은 Dong Prook Sa입니다.


급격한 경사로와 가파른 언덕으로 인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계단은 Phu Pha Ewawan으로 에라완 폭포의 최종 도착지입니다.


에라완 폭포의 에라완 이름은 세 개의 머리를 가진 힌두신의 이름입니다.


에라완 폭포의 정상까지 총 일곱 개의 계단을 오르는데 3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다섯 번째 계단까지는 무리없이 올라갈 수 있지만 마지막 두 계단을 거의 절벽을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라완 폭포를 하이킹 하신다면 체력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물, 간식 등을 미리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받으며 성인 400 바트 환율 계산 한화 약 16,000원 정도, 아동 200 바트입니다.



방콕 시내에서 출발할 경우 대략 3시간 반 정도 소요되며 


태국의 가장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하루 정도 시간을 내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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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차나부리는 태국의 중부, 방콕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인구 5만명 정도인 작은 도시는 태국에서 세 번째로 큰 칸차나부리 주에 속해있습니다.


칸차나부리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죽음의 철도, 콰이강의 다리, 칸차나부리 전쟁 묘지 등 역사의 아픔과


콰이강을 따라 이동하는 뱀부 레프팅, 크메르 사원, 젬스톤 빌리지 쇼핑 등의 다양한 관광 요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칸차나부리의 아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콰이강의 다리





칸차나부리의 콰이강은 콰에노이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강의 총 길이는 240km이며 태국과 미얀마 국경의 산지에서 발원하여 시암만으로 흐릅니다.


열대 강으로 강 바닥에 자갈이 깔려 있으며 물이 맑아 관광지로 유명한 강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콰이강을 따라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였으며,


군대의 이동과 보급품의 이동, 포로의 이동, 자원 채취 등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무대로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콰이강의 다리는 


195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7개 부문을 수상합니다.


일본군 포로의 신분이 된 영국 장교의 심리 변화와 고통, 그리고 자신들의 자긍심을 위해 완벽한 다리를 만들려는


포로들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에게 싶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콰이강을 건너 태국에서 미얀마로 연결되는 이 철도의 길이는 총 414km로 죽음의 철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20개월 동안 사용된 이 다리는 1945년 폭파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다리는 재건축이 된 다리입니다.


콰이강은 현재도 사용되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철도



출처 : flickr / Makilica



죽음의 철도는 태국 서부와 미얀마를 가로 지르는 414km의 철도입니다.


1942년 연합군 포로들은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3년 8개월 만에 철도를 완공시킵니다.


석회암 절벽과 울퉁불퉁 한 산을 깎아 만든 이 철도 공사에서 10만 명 이상이 사망합니다.


태국의 라차부리에서 미얀마를 거쳐 인도로 군수 물품과 자원을 운반하였습니다.


태국 프라삿 무앙 신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 톡 역까지 이어지는 77km 구간을 철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동굴과 절벽을 껴안고 달리는 이 구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철도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입니다.





제스 전쟁박물관



출처 : wikimedia



JEATH 전쟁 박물관은 콰이강을 방문하기 전에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입니다.


죽음의 철도 건설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콰이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목조 다리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포로 수용소를 재연해 만든 야외 박물관으로 사진, 그림, 신문 기사를 통해 참혹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JEATH 는 일본 Japan, 영국 England, 호주 Australia, 태국 Thailand, 네덜란드 Holland의 앞글자를 따서 붙였습니다.



칸차나부리 전쟁 묘지



출처 : flickr / David McKelvey



죽음의 철도가 완공되었을 때 약 10만 명 이상의 포로가 숨졌습니다.


이 묘지에는 6,982명의 포로들이 묻혀 있으며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묘지를 만들었습니다.


칸차나부리에는 돈락 전쟁 묘지와 총카이 전쟁 묘지 두 곳이 있으며,


총카이 전쟁 묘지는 당시 포로 수용소가 있던 곳에 조성되었습니다.


총카이 전쟁 묘지는 돈락 전쟁 묘지보다 규모는 작지만 좀 더 격식 있게 조성되었습니다.


1,720개의 묘비는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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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베트남 신화와 전설 그리고 기원에 대한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지난 번에는 꼰 롱 짜우 띠엔 신화로 베트남 최초 국가 반랑을 세운 훙왕과


외세의 침략을 철마와 철칼, 대나무로 막아낸 종, 지옹 장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꼰 롱 짜우 띠엔 신화 중 반랑을 세운 훙왕에 대한 벽화는


베트남 호치민 통일궁에 가시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손 띤 투이 띤 / Son Tinh Thuy Tinh





옛날 제 18대 훙왕에게는 미 누옹 / My Nuong 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습니다.


훙왕은 딸을 유능한 능력이 있는 남편에게 시집을 보내고 싶었고, 신랑감을 찾기 위해 대회를 개최합니다.


베트남 전국의 많은 청년들이 대회에 참가하여 본인의 실력을 경쟁합니다.


그러나 왕의 마음에 드는 청년이 단 한명도 없었고 왕은 실망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손 띤 / Son Tinh 이라는 청년과 투이 띤 / Thuy Tinh 이라는 청년이 왕을 찾아옵니다.


손 띤은 산의 신이었으며 산과 숲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투이 띤은 바다의 신이었으며 비와 물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명의 청년은 재주가 많고 능력이 출중하여 훙왕은 누구를 사윗감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였습니다.


왕은 이 두 명의 청년에게 반청이라고 불리는 베트남 전통 떡 100개, 둥근 찹쌀 100개,


9개의 상아가 달린 코끼리 한 쌍, 분홍 갈기가 9개 달린 말 한 쌍, 벼슬이 9개 달린 닭 한 쌍을


먼저 구해오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산의 신인 손 띤은 바다에 사는 투이 띤보다 먼저 이 선물을 준비하여 다음 날 아침 왕에게 바칩니다.


손 띤은 훙왕의 딸인 미 누옹을 데리고 산으로 갑니다.


뒤늦게 도착한 투이 띤은 이 사실에 분노하여 손 띤이 살고 있는 산 꼭대기까지 물이 차게 비를 내립니다.


그러나 물이 높아질수록 산의 높이도 더욱 높아졌습니다. 결국 투이 띤은 물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투이 띤의 앙금은 아직 풀리지 않아 매년 많은 양의 비를 베트남에 뿌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 짜우 쫌 투이 / My Chau Trong Thuy


출처 : wikipedia



아우 락 / Au Lac 왕조는 훙왕의 반랑 왕조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우락 왕조의 왕인 드엉 브엉은 나라를 돌보는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황금 거북이 신은 드엉 브엉 왕에게 마법의 활을 만들 수 있게 거북 발톱을 선물합니다.


이 활은 말 그대로 백발 백중의 활이었습니다.


당시 북쪽의 나라들은 항상 아우락을 공격했지만, 이 활로 인해 매번 실패합니다.


북쪽 나라인 남비엣 / Nam Viet의 왕은 기회를 노리다가 자신의 아들을 스파이로 아우락 왕의 딸과 결혼을 시킵니다.


남비엣 왕의 아들과 아우락 왕의 딸의 사랑은 깊어졌고, 급기야 마법의 석궁에 대한 비밀을 남비엣에 알리게 됩니다.


나중에 남비엣 왕의 아들은 이 석궁을 훔쳐 달아납니다.


남비엣 왕은 다시 아우락에 전쟁을 선포했고, 석궁이 도난당한 것을 몰랐던 아우락의 왕은 


산으로 도망치던 중 황금 거북이 신에게 도움을 요청해 남비엣 왕을 죽이고 본인도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남비엣 왕의 아들은 자신의 아내를 찾으러 돌아다니던 중 바닷가에서 숨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본인도 자살합니다.


이들의 피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굴이 이들의 피를 빨아들여 진주로 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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